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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황산벌 전투의 주역’ 계백(階伯) 장군임전무퇴… ‘구국 혼’ 불사르다
  • 블루투데이 기획팀
  • 승인 2012.05.08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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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백은 660년 나당 연합군 5만여 명을 황산(黃山 : 충남 연산)벌에서 불과 5000명의 결사대로 맞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백제의 장수다. 그러나 계백이 언제 어디서 태어나 어떠한 삶을 살았던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다만 계백이 백제의 16관등 가운데 두 번째로 높은 벼슬인 달솔(達率)에 이르렀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으로 보아 왕실의 신임을 받았던 인물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러한 추측은 ‘달솔’의 직책이 도성의 5부와 지방의 5방을 다스리는 우두머리의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볼 때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백제가 신라의 공격으로 최대 위기에 직면했을 때 사비성을 지키는 최후의 전선에 곧바로 계백이 투입됐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그가 왕실의 신임을 얼마나 크게 받았던 인물인지를 짐작게 한다.

‘삼국사기’의 계백 열전에는 전장으로 나가기에 앞서 계백이 결사대 5000명을 뽑은 자리에서 먼저 자신의 가족을 죽이고 나가겠다고 천명한 사실이 전해져 온다. 즉 “한 나라의 인력으로 당과 신라의 대군을 당하자니, 나라의 존망을 알 수 없도다. 나의 처자가 붙잡혀 적국의 노예가 될지 모르니 살아서 치욕을 당하는 것보다 차라리 통쾌하게 죽는 편이 낫겠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자신과 생사를 함께해야 하는 5000 결사대 앞에서 계백의 비장한 부르짖음은 병사 한 명 한 명에게 초개와 같이 목숨을 버릴 수 있다는 각오를 불어넣을 만했으리라.

여기에 더해 계백은 병사들에게 “옛날 월왕 구천(越王 句踐)은 5000명으로 오왕 부차(吳王 夫差)의 70만 대군을 무찔렀다. 오늘 마땅히 각자 분전해 승리를 거둬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라”고 격려했다. 계백의 비장한 각오와 격려에 병사들 모두 감화를 받아서일까. 실제로 계백의 5000 결사대의 용맹은 나당 연합군을 압도할 만했으며 네 번에 걸친 싸움에서 모두 승리했다.

그러나 반굴(盤屈)·관창(官昌) 등 어린 화랑들의 전사로 사기가 오른 연합군의 대군과 대적하기에는 그 수가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황산벌전투에서 백제군은 중과부적으로 패하고 말았으며 계백은 장렬한 최후를 마쳐야 했다.

계백의 생애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조선 후기 ‘동사강목’을 저술한 안정복의 계백에 대한 인물평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험지에 의거해서 진영을 설치한 것은 지(地)요, 싸움에 임해서 무리하게 맹세한 것은 신(信)이며, 네 번째 싸워 이긴 것은 용(勇)이요, 관창을 잡았다가도 죽이지 않은 것은 인(仁)이며, 두 번째 잡았을 때 죽여서 그 시체를 돌려보낸 것은 의(義)요, 중과부적해서 마침내 한 번 죽은 것은 충(忠)이다. 삼국 때에 충신과 의사(義士)가 물론 많았지만, 사전(史傳)에 나타난 것을 갖고 말한다면 마땅히 계백을 으뜸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김대중 전쟁기념관 학예팀장>

[ 출처 : 국방일보 http://kookbang.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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