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헌의 금산전투 기록화(전쟁기념관 소장). 중봉(重峰) 조헌(趙憲·1544~92)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 선비의 기개를 만천하에 보여준 상징적 인물이다. 조헌은 원칙과 명분을 중시하고, 타협과 융화에는 서툴러 관료로서는 크게 빛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과 옳다고 믿는 것을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춘 비범한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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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헌 흉상(전쟁기념관 소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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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산 칠백의총 봉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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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헌의 금산전투 기록화(전쟁기념관 소장). | ||
국방강화 주장 개혁사상가 의병 일으켜 일본군 격퇴 700의사와 ‘칠백의총’ 안치 위민·애민 삶 일관한 선비
경기 김포에서 출생한 조헌은 어려서 김황에게 시서(詩書)를 배웠는데, 집이 몹시 가난해 추운 겨울에 옷과 신발이 다 해져도 눈바람을 무릅쓰고 멀리 떨어진 글방 가는 것을 하루도 쉬지 않았으며, 밭에 나가 농사일을 도울 때나 땔감을 베어 부모의 방에 불을 땔 때에도 책을 손에서 떼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1567년 식년문과에 급제, 1568년(선조 1) 처음으로 관직에 올라 정주목·파주목·홍주목의 교수를 역임하면서 주로 율곡 이이, 우계 성혼, 토정 이지함 등과 깊은 학문관계를 맺어 사풍(士風)을 바로잡았다. 1572년부터 교서관의 정자·저작·박사를 지내면서, 궁중의 불사봉향(佛寺封香)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
조헌은 1574년 사신단을 따라 명나라에 다녀온 후 중국에서 보고 느낀 것을 토대로 조선의 국정개혁을 촉구하는 ‘선상8조소’라는 제목의 상소를 올렸다.
그 글에서 그는 명나라 군의 엄격한 군기를 본받자고 제안했다. 총 16개의 항목으로 구성된 그의 또 다른 상소인 ‘의상16조소’에서도 3개 항목에서 국방문제를 다루면서 왜구나 몽골·홍건적의 침입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난다면 20만 명도 되지 않는 조선군 병력으로 감당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중국군처럼 조선도 병사들의 훈련을 강화하고, 중국식 성곽의 장점을 본받자는 의견도 내놓았다. 이때 올린 상소들은 임진왜란 이전 조선 국방 체제의 한계를 분명하게 지적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이후 1584년(선조 17) 율곡이 사망한 후 그를 변호하다가 유배를 당하는 등 고초를 겪기도 했다. 그후 옥천군 안읍밤티(安邑栗峙)로 들어가 후율정사(後栗精舍)라는 서실을 짓고 제자 양성과 학문을 닦는 데 전념했다. 이때 가산사에 있던 영규대사와도 각별한 인연을 맺었다.
이후 정여립 모반사건을 계기로 예조정랑에 추천돼 중앙관직에 나아갈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수년 전인 1587년 일본이 조선에 사신 파견을 요구하자, 이를 거부하라며 또다시 세 차례의 상소를 올렸다. 특히 1591년 3월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겐소(玄蘇) 등을 사신으로 보내어 명나라 칠 길을 빌리자고 하므로 조정의 상하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일본 사신의 목을 베라며 도끼를 들고 한양에 올라가 상소한 사건은 유명하다. 이 모두 임진왜란 발발 직전 일본과의 사신 교환에 반대하며 올린 상소도 전쟁을 예측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이렇듯 그의 생애는 강직한 선비의 성품으로 인해 유배와 파직의 불운이 연속됐고, 당대에는 용맹스럽고 고집 센 인물로 평가받았다. 따라서 임진왜란 이전에 전쟁이 일어날 것을 예견하고 군정 확보, 군비 확충, 훈련 강화, 군율 확립 등의 국방강화를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592년 4월 그의 우려와 경고는 모두 현실이 됐다. 전쟁이 일어났고, 그가 우려했던 것처럼 조선군은 일본군을 감당하지 못했다. 자신의 경고가 현실이 된 상황에서 조헌은 이제 의병으로 전쟁터에 뛰어들 결심을 했다.
조헌은 그해 5월, 옥천에서 병력을 모아 의병을 일으켰다. 문인 이우·김경·전승업 등의 도움으로 1600여 명의 의병을 모집하는 데 성공하고 7월 초부터 본격적인 의병활동을 전개했다.
당시 조헌은 “귀신과 사람이 다 같이 증오하는 것은 도적이라. 화살이 이 원수들에게 함께해 그들의 고향 땅에 돌아가지 못하게 하리라. 뜻을 굳게 먹는다면 귀신이 감동하고 백성들이 따라나서며, 일을 이루려고만 한다면 천지만물도 도우리라”라는 격문을 써 의병을 모집했다.
조헌은 전라도 의병장 고경명(高敬命)이 금산전투에서 전사하자 의승장 영규(靈圭)·관군과 연합해 청주성 탈환을 계획했다. 8월 1일, 조헌은 승장 영규와 함께 청주성에서 첫 전투를 벌였는데 의병의 기세가 등등해 하늘을 찌를 듯했다.
청주성이 거의 함락되던 때에 갑자기 서북쪽에서 소나기 구름이 몰려와 사방이 깜깜해지자 조헌은 징을 울려 군사를 철수시켰다. 이날 밤 의병의 기세에 눌린 일본군들이 모두 도망가서 최소한의 희생으로 청주성에 입성할 수 있었다. 이로써 충청도 공략의 본거지를 탈환함으로써 호남 방어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충청도순찰사 윤국형의 방해로 의병이 강제 해산당하고 불과 700여 명의 의병만이 남게 됐다.
이후 조헌은 영규와 함께 금산 공격을 위한 권율과의 연합작전을 계획한 뒤 8월 16일, 남은 병력을 이끌고 금산으로 진격했다. 당시 일부에서 금산의 일본군이 모두 정예군이고 수효도 수만 명이 되므로 섣불리 대적할 수 없다고 했으나 조헌은 “군부(君父)가 지금 어디에 계시는데, 감히 이둔(利鈍)을 말하는가? 임금이 욕을 당하면 신하는 죽어야 되니 나는 한번 죽는 것만을 알 뿐이다”라고 하며 영규와 더불어 진격했다. 그런데 갑자기 권율 부대의 사정이 어려워져 연합작전을 잠시 미루게 됐다. 영규는 이 소식을 조헌에게 바로 전했으나 이미 조헌은 금산성 근처까지 진격한 뒤였다.
8월 18일, 조헌은 영규의 승군과 연합해 전라도로 진격하려던 고바야가와(小早川隆景)의 일본군과 금산성 밖에서 일전을 벌였다. 그러나 후속부대의 지원이 없는 상태에서 우세한 일본군의 공격을 막아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조헌은 “한 번의 죽음이 있을 뿐 ‘의(義)’에 부끄럼이 없게 하라”고 독려하며 일본군의 세 차례 공격을 모두 물리쳤으나, 온종일의 싸움으로 화살이 다 떨어져 더 싸울 수가 없었다. 이후 일본군이 일제 공격을 감행하자 의병들은 육박전을 벌여 한 명의 도망자도 없이 모두 순절했고, 영규의 승군도 모두 전사했다.
그러나 일본군도 사상자가 많아 3일간 그 시체를 거두어 불태우고, 무주와 옥천에 집결해 있던 일본군과 함께 퇴각함으로써 호남·호서지방이 안전하게 회복될 수 있었다. 이 해 9월 왜군이 물러간 뒤 조헌의 문인 박정량(朴廷亮)이 의사 700명의 유골을 모아 큰 무덤 한 곳에 합장했는데, 후세에 이를 ‘칠백의총(七百義塚)’이라 불렀다.
조헌은 평범한 관료라기보다 강직한 선비 같은 인물이었다. 율곡의 사상을 이어받은 개혁사상가로서 평소에 군비 강화를 주장했고, 임진왜란 직전에는 전쟁을 예측했을 뿐만 아니라 막상 전쟁이 시작되자 직접 최일선에서 의병으로 종군함으로써 지행합일을 몸소 보여준 실천가였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관인 인도와 정의를 추구했고, 무엇보다 민생안정의 바탕 위에 인간다운 삶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역사적 지성이었다. 의리정신을 계승해 위민(爲民)·애민(愛民)으로 그의 삶을 일관했던 참다운 선비였으니 그의 정신은 영원히 귀감이 될 것이다.
<박재광 전쟁기념관 교육팀장>
[ 출처 : 국방일보 http://kookbang.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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