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북한 북한story
<김현희> 1988년 1월15일에 발표된 KAL기 폭파 수사발표 全文
  • 이철구 기자
  • 승인 2012.09.17 11:07
  • 댓글 0

▲ ▲ 대한항공 858기 폭파후 체포되어 김포공항에서 압송되는 김현희
'김일성 주의자' 들은 거짓말을 잘한다. 진실도 거짓이라 주장하고 그 사실이 밝혀지면 왜곡이라 주장한다. 그들은 자신을 낳아준 부모님도 김일성이라 주장할 만큼 선동과 궤변의 달인들이다

1987년 11월 28일 밤 11시 27분 이라크의 바그다드를 출발, 아랍 에미리트의 수도 아부다비에 기착한 뒤 방콕을 향해 가던 대한항공 858편 보잉 707기(기장 김직한)가 29일 오후 2시 5분경 버마 근해인 안다만 해역 상공에서 공중폭발, 탑승객 115명 전원이 사망한 사망하였다.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KAL기 폭파 사건은 북괴가 자행한 사건의 하나로써, 그들의 호전성과 폭력성을 여실히 보여준 만행이었다. 그들은 이러한 만행을 수 없이 자행 하면서도 입으로는 '우리민족끼리'와 '민족자주' 를 소리 높이 외치고 있으니, 이보다 더한 위선자들이 또 어디 있겠는가?

국내의 북괴 추종세력들은 아직까지 KAL폭파부정설과 당시 사건을 자행한 '김현희' 증언 조차도 '조작설' 로 치부하여 왜곡선전에 앞장서고 있다.

공산주의자들은 거짓말을 잘 한다. 북괴는 이미 거짓말을 잘 하기로 이름이 나 있다. 그렇기에 북한추종세력도 따라서 잘한다. 그들에게는 거짓말이 일상이고 사실 조차도 '거짓말' 로 몰아가는 사례를 국내에서도 손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북괴와 그 추종무리들은 1950년 동족상잔의 한국 전쟁을 일으켜 놓고도, 그것을 아직도 남침이 아닌 북침으로 날조하고 있다. 천안함 사건도 '미국조작설' 등 여러가지 궤변으로 대중들을 혼란속에 빠트리고 있다.

1988년 1월15일에 발표된 KAL기 폭파 수사발표 全文

󰊱 사건의 개요
지난 해 1129일 오후 25분경 미얀마 안다만해역 상공에서 공중 폭발하여 115명의 고귀한 생명을 희생시킨 대한항공 858기 폭파사건은, 수사결과 북괴 김정일의 지령에 따라 자행된 가공할 만행임이 밝혀졌다.

이번 사건의 범인은 그동안 하치야 신이치와 하치야 마유미라는 이름으로 일본인을 위장했던 북괴 대남 공작원들임이 입증되었다.

범인 중 일본인으로 행세하다가 바레인 공항에서 음독 자살한 하치야 신이치는 이번 사건의 주범으로써, 북괴 노동당 중앙위원회 조사부소속 특수 공작원 <김승일>이며, 조사중인 하치야 마유미 역시 북괴 노동당 중앙위원회 조사부 소속 특수 여자 공작원 <김현희로> 밝혀졌다.

이들은 ‘88 서울 올림픽 방해 등 북괴의 대남교란 특수 공작을 위해 19847월부터 3개월 동안 부녀로 가장한 공작조로 편성되어 해외를 여행하면서 현지 적응훈련을 마친 다음,1987107<’88서울올림픽 참가신청 방해를 위해 대한항공 여객기를 폭파하라>는 북괴 김정일의 친필 공작지령에 따라 1개월 동안 시한폭탄 조작방법 등 특수 훈련을 받았다.

이들은 19871112일 평양 순안 비행장을 출발, 모스크바~부다페스트~~베오그라드를 거쳐 1128일 오후 830(현지시간) 바그다드에 도착한 후, 아부다비행 대한항공 858기를 갈아타기 위해 공항 대기실에서 3시간 동안 기다리게 되었다.

1129일 오전 55분쯤 (현지 시간 1128일 오후 115) 비행기 출발 시간 20분을 앞두고 이들은 여행자 휴대용품으로 위장한 라디오 시한 폭탄과 술로 가장한 액체 폭발물의 폭발 시각을 9시간 뒤로 조작한 후 폭파항공기에 탑승했다.

1129일 오전 744(현지 시각 1129일 오전 244) 중간 기착지인 아부다비 공항에서 이들은 폭발물을 선반위에 올려 놓은채 내림으로써 대한항공 858기는 9시간 후인 19871129일 오후 25분쯤 (한국 시각) 미얀마근해인 안다만해역 상공에서 폭파되어 115명의 고귀한 생명이 살해 되었던 것이다.
범인의 신원
일본인 하치야 신이치로 행세했던 김승일은 장기간 해외 공작활동을 해온 70세의 북괴 노동당 중앙위원회 조사부소속 특수 공작원으로,평양 시내 모란봉구역에 처와 7남매의 자녀가 살고 있으며, 특히 일어,중국어,영어,노어등 4개 국어에 능통하고 전자기술부문에 전문지식을 가진 정예 공작원이다.

일본인 하치야 마유미로 행세했던 금년 26세의 김현희는 평양시 동대원구역 동신동에서 북괴 외교부에 근무하던 아버지 김원석 (58)12녀중 장녀로써, 평양 하신인민학교와 중신중학교를 거쳐 김일성 종합대학 예과 1년을 수료하고 평양 외국어대학 일어과 2학년에 재학중인 19802월에 용모와 재능 성분 등이 모두 뛰어나 북괴 노동당 중앙위원회 조사부소속 공작원으로 선발 되었다.

1982415일에는 노동당에 입당하고, 85815일에는 조국해방 40돌 기념공로메달, 87415일에는 북괴국기훈장 3급을 받은 특수 여자 공작원에 속한다.

아버지 김원석은 1962년에서 67년까지 쿠바주재 북괴 대사관 3등 서기관으로 근무한 사실이 확인되었으며, 그 후 소련주재 북괴 대사관에서도 근무한바 있고 현재는 앙골라 주재 북괴 무역대표부 수산대표로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확인 중에 있다.

현재 평양 시내 문수구역 문수1동 무역부 아파트 71호에는 3명의 가족이 살고 있으며, 결혼 전 개성 만월중학교 교사였던 어머니 임명식(54)과 평양 동흥중학교 교사인 여동생과 평양외국어대학 아랍어과를 졸업한 남동생 등 가족 모두가 북괴 사회에 서는 성분이 좋은 열성 당원들이다.

특히 김현희는 미모와 좋은 성분으로 인해 인민학교 때부터 극영화의 아역배우를 했는가 하면, 중학1년 때인 1972112일 평양에서 개최된 남북조절위 2차회담에 참석한 한국측 장기영대표에게 꽃다발을 증정했던 장본인이기도 했다.
공작원의 훈련
범인 김현희는 평양 외국어 대학 2년 재학시인 19802월 용모와 일어능력 출신성분 때문에 공작원으로 선발되어 19804월부터 평양 용성구역에 있는 간첩양성기관인 금성 정치군사대학에서 1년간 밀봉수용되어 정치 사상 이론 및 격술 사격술 행군 등 군사훈련을 받았다.

19814월부터 19833월까지 2년간은 평양 동북리 초대소에서 일본인 여자공작원과 함께 숙식을 하며 일본어와 일본의 풍습 생활 예절등 일본인으로 위장하기 위한 일본인화 교육을 받은 다음, 19833월부터 847월까지 약 14개월간은 평양 동북리에 있는 또다른 초대소로 옮겨 군사훈련,자동차훈련,사진기술,간첩통신교육 등 대남 공작원으로서 필요한 전문교육을 받았다.
해외적응 실습여행
대남 교란공작에 투입하기 위해 19847월 부녀공작조로 편성된 이들 범인들은 34개월간 폭파훈련 언어교육 및 자본주의적응을 위한 해외여행 실습 등 철두철미한 공작 교육을 받았다.

그 후 1984815일부터 1개월 동안 현지 적응훈련을 위해 빈을 거쳐 코펜하겐~프랑크푸르트~제네바~파리 등지를 여행하면서, 공산국가에서는 북괴여권을 사용하고 서방국가에서는 위조 일본여권을 사용했음이 확인되었다.

구라파 여행을 끝낸 김현희는 단신 홍콩을 경유 마카오에 잠입 <애도> 호텔 122호실에 대기했으며, 범인 김승일은 일본인 하치야 신이치로 변신하여 1984921일 단신 김포로 잠입 926까지 6일간 서울 프레지던트 호텔에 투숙하였다가 1984928일에 마카오로 가서 그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김현희와 접선하여 북경을 거쳐 102일 평양으로 돌아갔다.

김현희는 평양으로 돌아간 후 19851월부터 856월까지 6개월간 일본어와 중국어를 집중적으로 교육받은 후 19857월부터 871월까지 16개월간 중국 본토 광주와 마카오에 파견되어 언어와 생활풍습을 체득하는 등 78개월이라는 장기간에 걸쳐 해외 공작원으로서의 전문 교육과 외국인화 교육을 받아왔다.
대한항공 858기 폭파지령
금번 대한항공 858기 폭파 사건은 1987107일 김정일이 북괴 노동당 중앙위원회 조사부장을 통하여 김승일 김현희에게 내린 친필 공작지시에 따라 자행되었다.

김정일의 친필 지령요지는 당은 남조선측의 두 개 조선책동과 올림픽 단독개최 책동을 막기 위해 대한항공기 1대를 폭파키로 결정하였다. 시기적으로 중요한 이번 사건은 세계 모든 국가들의 올림픽 참가의사에 찬물을 끼얹게 될 것이며,남조선 괴뢰 정권은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반드시 성취시켜야 하며 절대 비밀이 보장되어야 한다는는 것 등이었다.

대한한공기 폭파 지령을 받은 이들은 1987107일부터 1110일까지 1개월간 평양 동북리 초대소에서 받은 특수 폭파 훈련을 통해, 폭파방법을 여행자들이 일상적으로 휴대하는 소형 라디오와 술병으로 위장된 시한 폭탄을 기내에 장치 원인불명의 팍파로 가장 증거를 남기지 말것. 항공경로는 북괴 노동당 조사부 최과장 책임 인솔하에 평양을 출발 모스크바~부다페스트~빈 등을 경유하여 유고의 베오그라드에 도착할 것, 폭발물은 베오그라드에서 최과장으로부터 수령할 것. 바그다드발 서울행 대한항공기에 탑승하여 미리 준비한 시한폭탄을 기내에 놓아두고 중간 기착지인 아부다비 공항에서 내려 빈으로 탈출, 최과장과 합류하여 평양으로 복귀하라는 구체적 지령을 받았다.

이때 김현의에게 별도로 주어진 임무는 주공작원 김승일이 폭발물을 작동시키지 못할 불의의 상황 발생시에 이를 대신할 것 .일본인 부녀 관광객으로 위장 김승일의 신분을 엄호하고 공작금을 관리할 것. 최악의 경우 독약 앰풀이 든 담배를 깨물어 자살하여 김정일 동지의 권위와 위신을 백방으로 보장하라는 것이었다.

평양 출발 2일전인 19871110일 북괴 노동당 중앙위원회 조사부장은 김정일의 친필 지령임을 강조하면서 이들에게 198711282330분 바그다드발 서울행 858기를 폭파하라는 최종 지령을 내렸다.

이처럼 북괴는 대한항공기 폭파가 사후에도 누구의 소행인지 규명되지 않는 완전범죄로 꾸미기 위해 10~112개월에 걸쳐 치밀한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이 같은 북괴의 범행 목적은 올림픽 참가신청 마감일을 약 50일 앞두고 서울행 항공기를 V폭파함으로써 서울 올림픽의 안전문제를 세계에 여론화하여 참가 예상국을 위축시키고 종국적으로는 서울 올림픽 자체가 열리지 못하게 하고,198711월을 전후해서 개헌 대통령 선거등 정치일정을 둘러싸고 극도로 복잡해진 국내 정국을 더욱 혼란시키고, 사회불안을 가중시켜 민주발전추진을 저해시키려는 한편, 특히 중동과 동남아지역에 기착지가 많은 대한항공 노선중 바그다드발 서울행 대한항공 858기를 폭파표적으로 삼은 것은, 이 노선을 집중적으로 이용하는 해외진출 근로자들을 희생시킴으로써 국내 근로계층 서민의 대정부 불신을 더 한층 충돌 시킬 수 있다는 계산에서 나온 것이 분명하다고 하겠다.
김정일에게 선서 후 출발
폭파지령을 받은 이틀 후인 19871121일 오전 6시 초대소 응접실 김정일의 사진 앞에서 이들은 김현희가 대표로 김정일에 대한 맹세문을 낭독 선서하였다. 그 내용은 지금 온 나라가 80년대의 속도로 사회주의 대 건설에 들끓고 있고 남조선 혁명이 고조에 이르고 있으며, 적들의 두 개 조선책동이 악랄해지고 있는 조건에서 전투 임무를 받고 적후로 떠나 적후에서 생활하는 기간 언제나 당의 신임과 배려를 명심하고 3대 혁명 규율을 잘 지키고 서로 돕고 이끌면서 주어진 임무를 훌륭히 완수 하겠으며(3대 혁명 규율은 조직,사업,생활규율을 말함),생명의 마지막 순간까지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높은 권위와 위신을 백방으로 지켜 싸우겠다는 것이었다.

선서를 마치고 김현희는 김옥화 명의의 북한여권을 받고 외교관 여권을 가진 북괴 노동당 조사부 최과장과 최지도원의 인솔 아래 주범 김승일과 같이 평양 순안비행장을 출발하여 예정된 경로를 따라 모스크바를 경유 19871113일 부다페스트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현지 북괴 대사관 직원의 안내로 비밀 아지트에서 6일간 대기하다가 19871118일 북괴 대사관 승용차로 오스트리아 빈으로 가던 중 차내에서 북괴 여권을 반납하고,<하치야,마유미> 명의의 일본 위조여권을 건네 받은 후 빈에 도착하여 그곳 암파크링 호텔 603호실에서 5일간 투숙했다.

19871119일 김승일이 오스트리아 항공사에서 공작 목표인 대한항공 858기에 탑승하기 위한 빈~베오그라드~바그다드~아부다비~바레인행 항공권을 구입하고, 다음날인 1120일에는 그곳 알리탈리아 항공사에서 임무완수 후 복귀하기 위한 아부다비~암만~로마행 항공권도 구입하였다.

19871123일 현지 시각 오후 225분쯤 오스트리아 항공편으로 빈을 출발 동일 오후 330분쯤 유고에 도착해서 메트로폴리탄 호텔 811호실에 투숙하면서 임무 종료후 최과장 등 지도원과 합류하기 위해 로마에서 빈으로 가는 항공권을 1126일 오스트리아 항공사에서 미리 구입하였다.

이들은 1987112719시경 별도 열차편으로 베오그라드에 도착한 최과장으로 부터 일제 파나소닉 라디오를 위장한 시한폭탄과 술병으로 위장한 액체폭발물을 넘겨 받았다.

폭발물을 인수받은 이들은 사전 계획대로 19871128일밤 바그다드발 아브다비~방콕 경유 서울행 대한항공 858기에 탑승,김현희가 쇼핑백에 넣어 소지하고 있던 시한장치 폭발물을 좌석번호 7B7C선반 위에 올려 놓은채 휴대품만 들고 아부다비공항에 내렸다.

방콕을 향해 계속 운항중이던 대한항공 858기는 198711291401(한국시간) 미얀마 안다만해역 상공에서 랑군관제소에 <정시 방콕 도착,시간과 위치 정상>이란 최종교신을 한후 범인들이 시한장치한 9시간 후인 1405분경 (한국시간)공중 폭파된 것으로 판명 되었다.

수사경위

198711291401분 대한항공 858기가 미얀마 랑군 지상관제소와 최종교신 후 실종되자, 정부와 대한항공사는 제반 정황을 분석한 결과 동 비행기가 테러에 의해 공중폭파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아랍 에미리트 주재 대사관과 대한항공지사에 긴급 지시하여 아부다비 공항에서 내린 15명의 외국인 탑승자 명단을 확인, 하치야 신이치와 하치야 마유미를 그 용의자로 추적하게 되었다.

이들은 통상 일본 여행객들이 입국신고서에 성만을 기재하는 것과는 달리 신이치,마유미 등 이름만을 기재한 점 , 빈 베오그라드등 북괴가 해외 공작거점으로 자주 이용하고 있는 지역을 여행한점, 그리고 목적지인 바레인은 베오그라드에서 암만을 경유, 바레인으로 직행하는 것이 편리한데도 이들은 3시간 또는 6시간씩 공항내에서 통과여객으로 대기하면서 까지 바그다드와 아부다비를 경유하는 대한항공 858기를 이용한 점, 또한 이들이 대한항공기 실종 사건을 알게 되자 출발 시간을 앞당겨 투숙한 호텔을 급히 나간점 등 수상한 점이 많이 발견되었다.

이에 따라 바레인주재 우리 공관은 이들이 소지한 일본여권을 현지 일본 대사관에 긴급 확인한 결과 위조여권임이 드러났으며, 바레인 당국이 공항에서 출국수속을 하려는 이들을 연행 조사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음독 자살을 기도함에 따라 이들에 대한 용의점이 더욱 짙어지게 되었다.
한편 당부(안전기획부)에서는 사건발생 직후 동 사건을 북괴의 소행으로 추정하고 수사관을 바레인으로 급파하여 범인들이 독극물을 이용하여 음독자살을 기도한 수법이 북괴 간첩들이 검거되었을때 사용하는 행동 수법과 동일하고, 자살용 독극물 형태가 과거 검거된 간첩 신광수 정해권 등이 소지했던 것과 같다는 사실 등 수사 사례를 근거로 바레인 수사당국에 이들이 북괴 공작원이 틀림없음을 설명하고 신병인도를 요청하였다.

이에 따라 바레인 당국이 지난 1215일 피해당사국인 우리측에 범인 김현희의 신병과 김승일의 사체 및 증거물 일체를 인계함으로써 본격적인 수사가 착수되었던 것이다.

19871215일 서울에 도착 직 후 김현희는 음독 후유증과 탈진 상태로 건강이 악화되어 눈을 감고 누운 채 취식과 진술을 일체 거부했다.

철저한 자해예방 조치가 취해진 가운데 음독 후유증 치료와 건강체크를 받고 있던 범인은 도착 다음 날인 1216일부터 중국어와 일본어를 사용하며 간단한 진술을 시작했다.

도착 3일 후인 1218일 한끼의 죽을 먹고 난 범인은 중국어로 햄버거를 달라고 했으며,이때부터 밥을 먹기 시작 했다.

비교적 정신적 안정을 회복하고도 범인은 5일간이나 계속된 우리말 신문에는 일체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며, 중국어 시를 써서 소개하는 등 중국인 행세를 계속했다.

범인은 중국어와 일본어로 "나는 중국 흑룡강성 태생의 <백취해>로 광주에서 살았다"
" 출생 직후 어머니가 재가해서 나는 고아다." "19867월 광주에서 마카오로 불법 이주,도박장 종업원으로 생활하던 중 <하치야 신이치>를 만나 그의 양녀로 입양되어 일본에서 살고 있다." "조선사람과 재혼 방직공장에서 일하는 어머니를 만나러 평양에 간 적이 있다." 는 등 허위진술을 반복함으로 해서 수사상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나 범인이 조사받는 과정에서 침구를 정리하는 방법 등이 철저히 규율화된 북괴 초대소 습관으로 관철 되었을 뿐 아니라,그가 거주하였다고 주장한 일본 주소지가 허위로 확인 되었으며,중국 일본의 전통적 생활양식이나 지리에 미숙하고 사용하는 중국어가 흑룡강성 말씨가 아닌점 등이 발견되어 진술내용의 허위 여부를 다각적으로 추궁하게 되었다.

시일이 경과하게 됨에 따라 범인은 TV등을 통해 본 우리나라의 시민생활상이나 수사관의 신문방법 등이 북괴에서 교육받은 내용과 크게 다른점 등에서 자신이 허위교육을 받고 북괴의 테러행위에 도구로 이용되었음을 자각하게 되어 심한 심리적 동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서울 도착 8일 후인 지난 1223일 오후5시경 범인은 갑자기 옆에 있던 여수사관의 가슴을 밀어치면서 "언니 미안해" 라는 우리말을 처음 사용하고 울먹였다. 그 후부터 그는 범행 일체를 우리말로 순순히 자백하게 되었다.

안보단체 블루유니온에서 운영하는
블루투데이 후원도 소중한 애국입니다

기사에 언급된 취재원과 독자는 블루투데이에 반론, 정정, 사후보도를 청구 할 권리가 있습니다.
권리요구처 : press@bluetoday.net

이철구 기자  bluelee@bluetoday.net

<저작권자 © 블루투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철구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오늘의 주요뉴스
로버트 킹 前 북한인권특사, 한국 비판…“北인권문제에 소극적”
로버트 킹 前 북한인권특사, 한국 비판…“北인권문제에 소극적”
北, 통합당 영입 태영호 깎아내리기…“횡령·강간 저질러”
北, 통합당 영입 태영호 깎아내리기…“횡령·강간 저질러”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