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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제)에 대한 남재준의 입장은 명쾌하고 단호하다. 한국 배치가 무산되면 한·미동맹이 깨지기 때문에 반대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동맹의 조건으로 가치·이념 공유, 공동의 이익, 상호신뢰 세 가지를 지적한다. 이 중 한 가지라도 무너지면 위기로 간주된다. 그는 지금 한미동맹이 과연 어디 와 있는 지 냉정하게 들여다 볼 것을 주문한다.
그는 2003년 육군참모총장이 되기 전 약 1년 동안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지냈다. 2005년 대장으로 예편하기까지의 현역 때나 이후나 한·미동맹의 근간인 한·미연합사령부와 전시작전통제권에 그는 초지일관해 왔다. 노무현 정부가 한·미연합사 해체를 시도했을 때 육군참모총장 남재준은 자체 핵무장 대응논리로 맞서 시한을 2012년에서 2015년으로 일단 연장 무마했다.
“반미 친미 아니라 用美가 정답”
주한미군과 한·미연합사, 전시작전통제권은 친미, 반미 시각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며 용미(用美)가 정답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2007년 언론 인터뷰에서 남재준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연합지휘관을 미군사령관이 맡고 있는 것을 그 예로 들었다. 그리고 독일의 경우 독일군 아닌 독일주둔 미군사령관이 전시작전통제권을 행사하는 사실도 예시했다. 반미 친미 논쟁으로 국력을 소모할 것이 아니라 용미(用美)로 국가이익을 챙겨야 한다는 이야기다.
남재준은 같은 인터뷰에서 미국의 한반도 분단 책임에 관해 질문을 받았다. 1945년 테쓰라-카프트밀약으로 미국이 필리핀을 지배하는 대신 일본의 조선 병탄을 묵인할 것을 빗댄 질문이었다. 남재준은 한반도 분단이 미국 일본의 책임이 아니라고 했다. 궁극적으로 구한말 쇄국정책 등으로 망국을 자초한 우리 못난 조상 탓 아니냐는 반문이었다.
한미연합사령부 해체와 전시작전환수 논란과 관련해 그는 “자주국방의 문제로서가 아니라 싸워 이길 수 있느냐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단독작전능력 아닌 전쟁 승패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한미공동연합군으로 작전해 왔으므로 전작권 환수라는 용어 자체가 부적절하다고도 했다. 한미연합사가 해체되면 유사시 미군 증원이 불확실하고 한국군 단독전작권으로는 전력 약화가 불가피하다는 설명이었다.
“한미연합사는 한반도 평화에 필수”
그는 유사시 미국의 독자적 행동을 막기 위해서라도 전작권을 묶어둬야 한다고 말했다. 전쟁은 평화적 집단과 호전적 집단의 전력이 대등할 때 일어나므로 압도적 전력을 유지해야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막고 평화통일도 달성할 수 있다고 그는 강조한다.
국군이 일본군으로 복무한 인사들 주축으로 창설된 것 아니냐는 취지의 질문에 대해서는 이렇게 답변했다. “일본군 경험을 차용했다고 정통성이 없다니… 국군은 그들의 정신을 계승한 것이 아니다.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거나 기미가요를 부르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고 애국가를 부르고 있지 않은가. 일본도 마찬가지다. 육군은 독일 육군을 배웠고 해군은 영국 해군에서 배워 만들었다.”
2003년 4월 노무현 대통령의 청와대는 남재준을 임기 2년의 육군참모총장으로 발탁하면서 그의 도덕성과 업무능력, 강직성을 높이 평가했다. 총장 재임중 국방장관 유력 후보로 검토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권은 그를 장관에 낙점하지 않았다. 총장 임기 만료와 함께 전역한 그는 훗날 “장관이 되면 정치적 중립 입장을 고수하기 어려워 그럴 생각이 없었다”고 말했다.
현역 때 그에게는 센 군기의 표상인 ‘생도 3학년’ ‘리틀 이순신’ ‘선비’ 등의 별명이 늘 따라 다녔다. 청렴 강직하고 자기관리에 철저했기 때문이다. 그가 참모총장이었을 때 장교의 도덕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정착된 시기여서 그는 멋있는 군인으로 주목받았다. 재임중 그가 가장 역점을 둔 복무지침은 장교단 정신 정립이었다. 군인정신을 강조했으며, 안중근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의 정신을 이어받아 위국헌신하자고 장교들을 독려했다.
“융통성은 잔재주 처세술이 아니다”
군 지휘관으로서 남재준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절대 부하한테 지시하지 않는다”는 것이 하나의 신조였다. 그는 ‘군인정신’의 표상으로 선후배들에게 각인돼 있었다. 후배들에게 그는 명예를 특히 강조했다. “직업군인의 끝은 군복을 입고 죽든가 군복을 벗든가 둘 중 하나다. 군복을 입고 죽는 것은 전사나 사고사, 병사하는 경우다. 전사가 가장 명예롭지만 마음대로 안 되지 않으냐. 그렇다면 죽는 것보다는 영예롭게 군복을 벗는 게 낫지 않으냐.”
원칙주의에서 그는 전역 후에도 한치 흐트러짐이 없다. 2007년 인터뷰 때 융통성이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자주 들린다는 지적이 나오자 그는 “군인에게 융통성이라는 것은 즉응적으로 최선의 대처를 할 수 있는 방책의 다양성이지 자기이익을 위해 잔재주를 피우는 처세의 요령이 아니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순신 장군은 선조임금이 나가 싸우라고 했지만 안 나갔다. 군인의 본분은 싸워 이기는 것인데 질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긴다는 원칙을 대신할 원칙은 없다. 이순신은 원칙을 지켰다. 반면 원균은 나갔다. 원칙을 저버린 것이다. 융통성을 발휘한 건데 조선 수군을 전멸시켰다. 그런 걸 융통성이라고 한다면 나는 융통성 없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진급심사 개입 盧 정부에 정면대응
남재준 육군참모총장 재임 때인 2004년 육군 장성 진급을 둘러싸고 이른바 인사파동이 있었다. 남 총장이 자기 사람만 진급시키려 한다는 내용의 괴문서가 나돌았고 군검찰이 육본 인사참모본부를 압수수색하는 등의 잡음이 있었던 것을 일컫는다. 일각에서는 당시 노무현 정권 실세들이 장군 진급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다 남 총장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힌 상황에서 어디선가 괴문서를 유포토록 사주했다는 관측이 있었다.
노무현 정부는 장군 진급심사 절차를 문제삼아 군 인사에 관여하려 했다. 진급후보를 단수 추천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했고 남 총장은 강력히 반발했다. 군의 정치적 중립이 훼손되면 안된다는 주장이었다. 그러자 정권 측은 보수성향의 장성들을 옷벗기기 위해 군 검찰을 동원해 대대적인 비리수사를 벌였다. 껄끄러운 남재준에 대해 군검찰을 동원해 압박을 가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야전군 입장을 대변하는 성향의 남재준 참모총장은 군 인사에 대한 정권 측 압박에 정면으로 맞섰다. 휘하 지휘관 회의에서 고려시대 무신정변 ‘정중부의 난’을 언급하기까지 했다는 말이 나돌았을 정도다. 이 소문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일단락됐다. 파동과 관련해 남재준 총장은 인사권자인 노무현 대통령에게 전역지원서를 제출했으나 반려됐다.
“장군 100% 물갈이 요구 거절했다”
남재준은 참모총장 천거와 관련해 처음에 사양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정권 측과 이념적 코드가 맞지 않
아 함께 호흡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더라도 누군가는 참모총장을 맡을 것이므로 차라리 맡아
서 제대로 해보라는 주변의 권유를 받아들여 총장직을 수락했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청렴하고 강직한 남재준을 통해 실제로 보수 성향의 군 장성들을 완전 정리할 계획을 세
웠던 것으로 보인다. 2년 총장임기를 마치고 2005년 전역한 뒤 남재준은 “노무현 대통령 측이 총장 임
기 4년을 보장해 줄 테니 장군을 100% 물갈이 하라는 전갈을 받았으나 거절했다”고 밝힌 적이 있다. 남
재준은 육군의 인사에 관한 한 참모총장 소관이라는 소신과 원칙을 고수했다.
“노무현 매력 있지만 원수로는 역적”
노무현 정권 측과 남재준 육군참모총장 사이 갈등은 또 있다. 노무현 정부는 군사법(軍司法)제도를 개혁, 지휘관이 관장해 온 군 검찰을 독립시켜 국방부 산하에 두려 했다. 비무장지대의 대북 심리전용 선전물을 제거하려고도 시도했다. 남재준은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남재준은 만약 군 검찰이 독립기구로 분리됐다면 군은 와해되고 말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방백서의 주적 개념을 놓고도 그는 정권 측과 코드가 맞지 않아 마찰을 빚었다. 북한 지도층과 북한군은 분명히 주적이라는 소신 역시 그는 굽히지 않았다.
국군기무사령관을 지낸 송영근 전 의원(예비역 중장)은 몇 년 전 노무현 대통령 정부가 국가보안법 폐지와 한미연합사 해체를 목표로 삼았다고 증언했었다. 2003년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이 당시 기무사령관이던 자신에게 직접 그런 요청을 해왔다는 것이다.
남재준은 2016년 사석에서 “인간적 측면에서 노무현은 매력 있다. 다만 국가원수 국군통수권자로서는 역적이다”고 말했다. 그는 국군 이라크파병에 관한 뒷얘기도 함께 들려줬다. 막판까지 불가방침에 묶였던 유엔평화유지군(PKO) 이라크 파병이 노무현다움에 힘입어 극적으로 결정됐다는 것이다.
“어느날 노 대통령이 군 고위간부들을 대상으로 청와대에서 강연을 했다. 약 1시간 동안 왜 이라크에 파병하면 안되는 지에 관해 열변을 토한 뒤 다른 의견이 있는 지 물었다. 내가 손을 들었다. 나는 월남 참전 국군의 막내로, 김일성 김정일이 국군을 두려워 하고 남침을 못해온 것은 국군이 베트남 참전자들로 포진해 있었기 때문이다, 군인에게 참전경험이 있나 없나는 하늘과 땅 차이다. 파병해야 한다”
“그러면 (이라크에) 가야겠네요”
“군인은 오직 조국을 위해 충성한다”
2005년 4월 남재준 참모총장은 계룡대 대강당에서의 전역 고별강연을 끝으로 육사 졸업 후 36년 군생활을 마감했다. 그는 전사와 조직의 명예를 특별히 강조했다. “여러분은 전사다. 본인의 가치관과 조직의 명예를 위해 목숨을 바칠 자세가 돼 있어야 한다. 내 조국 내가 신봉하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죽어야 할 때 군인은 죽을 수 있어야 한다.”
2006년 8월 재향군인회 주관으로 전직 국방장관들의 모임이 있었다. 함께한 군원로들은 노무현 정부에서 국방장관을 지낸 인사들을 향해 호통을 쳤다. 그리고 전작권 회수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 해 12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원색적으로 비판하는 발언이 이어졌다.
같은 해 12월 전직 국방장관, 합참의장, 3군 참모총장, 해병대사령관, 연합사부사령관 등 예비역 장군들이 성명서를 발표했다. 연합사 해체에 반대하며 전작권 단독 행사에 반대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한미연합사는 전쟁을 억지하며 유사시 미증원군으로 승리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히고, 진급을 위해 정치권에 줄서는 행태 등을 강력히 비판했다. 당시의 청와대, 종북세력, 국방부의 정치군인들은 크게 반발했다.
남재준도 성명서 작성 명단에 포함돼 있었다. 훗날 언론 인터뷰에서 육군참모총장 출신으로 성명에 동참해 부담스럽지 않았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군인은 조국을 위해 충성하고 신명을 바치는 것이지 특정 정당이나 정부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다. 나도 그런 소신으로 평생을 군에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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