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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전국대학생 국방정책 우수논문집 ① 북한군의 통일 한국군화 연구 방안한국위기관리연구소,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 제6회 전국대학생 국방정책 우수논문집
  • 한국위기관리연구소
  • 승인 2015.11.03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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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의 통일한국군화 연구 방안
- 정신교육(정훈교육)을 중심으로 -
A Study on Identity Education for South-North Military Integration
육군사관학교 군사학과 4학년
고 귀 한


제1장 서 론
제2장 한반도 군사통합의 특수성 : 독일 통일과의 비교
2.1. 독일 통일의 과제와 문제점
2.2. 한반도 군사통합의 특수성
제3장 통일한국의 군사통합 방안 : 정신교육
3.1. 통일한국군 정신교육의 필요성과 방향
3.2. 북한국의 통일한국군화 정신교육 과목
제4장 결 론


제1장 서 론
2014년 3월 28일 독일 드레스덴(Dresden)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구상”이라는 제목의 대북 원칙을 발표하였다. 이 구상은 남북한 주민들에 대한 인도적(人道的) 문제 해결, 남북 공동번영을 위한 민생(民生) 인프라 구축, 남북 주민간 동질성(同質性) 회복 등의 남북화해와 평화를 이끌기 위한 구체적 제안들을 포함하고 있다. 북한 측에서는 드레스덴 구상을 남한 주도의 흡수통일을 하려는 대결선언이라 반발하였으나, 드레스덴 선언(Dresden Declaration)은 기존에 정체되어왔던 통일과정에서의 남북 주민들간의 재사회화 및 동질성 회복 연구에 있어 새로운 장을 열어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드레스덴 선언은 정부 차원에서 통일을 위한 아젠다(agenda)를 제시함으로써 향후 통일을 위해 선행되어야 할 연구과제들을 제시하고 있다는 의의를 담고 있다. 이는 비단 남북간의 경제·사회적 문제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통일 한국건설의 주요 쟁점(爭點)이 될 군사적 측면에서의 주요 과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와 같이 새로운 통일한국을 위한 과제들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논의(論議)는 현재까지 제대로 진행되어지고 있지 않고 있다. 통일한국의 군사통합 방안에 대해서는 다양한 선행되어온 연구들이 논의를 해 왔으나1),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째, 남북간의 통합(統合)에 있어 구조적인 측면을 중점적으로 제시하고 있어 군사통합시 남북의 군인들이 느끼게 될 아노미적 측면은 상대적으로 폄하(貶下)되고 있으며 둘째, 한국에서 있을 새로운 남북통합의 과정을 오직 베트남, 예멘, 독일의 통일 사례에서 그 본을 받고자 하는 모습이 보여 한반도에서의 통일에서 나타날 특징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한계점(限界點)을 보이고 있고 셋째, 향후 통일한국군의 건설에 있어 필수적인 부분일 북한군의 통일한국군화를 위한 정신교육(精神敎育)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한반도에서의 통일이 기존에 있었던 베트남, 독일, 예멘 등과의 통일과정과는 전혀 다른 양상(樣相)이 될 것이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한반도라는 지리적 특성과 일제 강점기에서의 해방(解放), 외국에 의한 분할 점령과 한민족끼리의 내전(內戰) 등의 변수는 기존에 있어왔던 통일 사례들을 연구하는 것만으로는 반영하는데 그 한계가 있으며, 이에 따라 오늘날 새로운 시대에 맞춰 한반도의 현실을 반영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남북한의 통일 과정에서 북한 주민들이 겪게 될 내재적(內在的) 혼란과 사회적응 과정에서의 아노미(anomy)는 기존의 그 어떤 사례들보다도 클 것으로 예상되며, 심지어 내전을 치르고 반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서로를 주적(主敵)으로 받아들여 왔던 남한 군인과 북한 군인이 느끼게 될 충격은 매우 클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총 인구가 약 2,500만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현실적으로 이들 모두에게 신속한 통일교육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유년층, 청소년층의 북한 주민에 있어서는 향후 학교 등의 교육기관을 통한 통일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도 모르나 중장년층과 노년층 등이 평생동안 내재되어 온 가치관(價値觀)을 하루아침에 변화시키는 것이 쉬울리가 없고, 또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현실적인 대책(對策) 역시 부재(不在)할 것이 자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통일한국 정부는 최대한 빠르게 한국의 체제(體制)를 받아들여야 할 집단의 우선순위를 매기는 과정을 필수적으로 거치게 될 것이고, 이 과정의 최우선순위는 북한군이 될 것이다. 성인으로 이루어지고 한국에 적대감(敵對感)을 품고 있는 수십만의 북한군은 신속한 탈공산화가 이루어지지 않을 시 현 체제를 다시금 전복(顚覆)시키거나 혹은 거대한 사회의 혼란을 초래(招來)할 수 있는 강력한 무력집단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독일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다양한 문제들로 인해 통일 시 북한군의 완전한 배제(排除) 및 전역(轉役)이 이루어질 것이라고는 보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선행 연구들에 따르면 통일 한국에서 군사통합이 이루어지게 된다면 합의적(合意的) 흡수통합의 형식으로 남한이 북한의 군사력을 흡수해 통합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인데, 이 과정에서 남한보다 1.5배가량 많은 인원을 보유하고 있는 북한의 군인을 전원 전역 조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통일 이후 구 북한지역 시설안정화 및 재래식(在來式) 무기 처리 등을 감안할 때도 일부 인원의 잔류는 불가피한 일일 것이다.
잔류하게 될 북한군 병력의 흡수통합이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대다수의 군사통합을 주제로 다룬 논문이 지적하듯이 우리 군이 당면할 가장 큰 과제는 바로 이 병력들의 완전한 통일한국군화가 될 것이다. 사회주의 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북한군이 결코 통일한국군으로 흡수되지 못할 것임은 자명(自明)한 만큼, 이를 대비하기 위해 군은 하루라도 빨리 통일 후 이루어질 군사통합간 북한군의 민주화(民主化)를 이끌어낼 수 있는 교육방안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선행연구에 따르면 통일한국의 군사통합은 합의적 흡수통합의 형식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2)
따라서 본 논문은 강제적(强制的) 흡수통합3) 대등적(對等的) 합병통합4) 대등적 합병통합이란 합의에 의한 대등적 합병통일 상황으로, 당사국간의 대등한 군사통합조건이 합의되고 당사국 군제중심의 군사통합이 이루어지며 통일이라기보다는 통합적 의미가 큰 군사통합 유형이다. 제도적으로 무력갈등요인을 내재하고 있으며 대표적 사례로 예멘의 군사통합을 들 수 있다. 최기하, op. cit, p.10
의 방식으로 이루어질 통일에 대해서는 논하기 보다는, 보다 실현가능성이 높은 통일한국의 군사통합 방식이 합의적 흡수통합에 의해 이루어질 경우에 대해서만 논할 것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합의적 흡수통합이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북한군의 통일한국군화를 이끌어냄으로써 통일한국군의 정신전력(精神戰力)을 강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고자 함에 그 의의를 두고 있다.
제2장 한반도 군사통합의 특수성: 독일 통일과의 비교
2.1. 독일 통일의 과제 및 문제점
독일의 통일 과정에서, 통일 이전에는 동독과 서독간의 민족적, 문화적 공통성이 체제의 차이로 인한 이질감(異質感)을 압도하는 만큼 체제의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사회의 내적 통합이 손쉽게 이루어질 것이라는 낙관론(樂觀論)이 크게 자리잡고 있었다.5)
그러나 이러한 생각이 지나친 낙관이었음이 곧 드러나게 된다. 동독과 서독은 서로간의 불신과 갈등을 가지고 있었고, 동독인은 서독인에 비해 심한 열등감(劣等感)을 품고 있었으며 서독인은 동독인을 구제하기 위해 희생했다는 피해의식을 갖고 있었다. 서로를 오씨(Ossi)와 베씨(Wessi)라 부르는 등 서독과 동독의 적대감은 통일 직후 발생한 심한 적자와 경기침체에 더불어 독일 사회의 가장 큰 과제로 손꼽히게 되었다.
동독의 경우, 수십 년간 지속되어 온 폐쇄적(閉鎖的)인 사회구조는 점차 동독인들을 수동적이고 권위에 복종하게 만들었다. 이는 특히 동독군의 모습에서 잘 드러났는데, 서독 군인이 보았을 때 동독군인들은 자신들과는 달리 ①군 간부들이 군사적 측면에서는 매우 훌륭하게 교육을 받았으면서도 명령을 기다리는 경향이 농후(濃厚)하고 창의성(創意性)과 자발성(自發性)이 결여되어 있었으며6) ②상급자에게 솔직하게 자기 의견을 개진(開陣)하며 토의할 줄을 모르는 등 7) 전체적으로 개인의 일상에만 충실하고 능동적(能動的)으로 행동하지 않는 군인이었다. 이는 공산주의 체제 하에서의 억압적인 체제의 결과로 여겨졌는데, 이와 같은 생활양식을 지닌 채 수십 년을 살아온 동독인들이 당과 국가가 사라지게 되면서 사회적 아노미를 겪게 되었다는 것이다.
능동성의 부재와 새로운 방식으로의 적응은 결과적으로 동독인들이 서독인에게 열등감을 품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동독인은 서독인에 비해 적은 임금을 받았고, 서독의 체제가 동독에 이식됨에 따라 새로운 문화에 대한 적응을 강요받았다. 이 과정은 동독인들이 마치 자신들이 서독에 의해 식민지배를 받고 있는 것과 같은 피해의식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통일 전후 동독경제가 어려웠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생산설비의 낙후, 즉 기술적인 전제조건이 구동독에서 충분치 않았기 때문이다. 자원 역시 부족했다. 이런 객관적인 조건이 충족되었다면 동독도 서독 못지않은 경제력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그런데 지금 서독인은 우리를 게으른 개로 취급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 동독인이 일하는 법을 모르니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클라우스, 47세 실업자) 8)
뿐만 아니라 동독의 마지막 총리였던 드메지 에르는 동독인이 서독에 의해 변화를 강요당하고 있다고 말하는 등 9), 분단 기간동안 피차간(彼此間)에 형성된 거리감은 어느 한순간에 극복하기 힘든 것이었다. 하루아침에 조국을 빼앗겼다는 느낌을 받고 순식간에 실업자가 되거나 무능력자로 내몰린 동독인들은 서독인에게 큰 피해의식을 느껴 과거 동독에 대한 향수(鄕愁)를 느끼기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통일이 자신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이와 같은 인식은 구 동독주민들의 통일에 대한 평가에서 잘 나타난다.
<표1> 구동독 주민의 통일에 대한 평가(단위:%) 10)
위와 같은 과정은 한반도에서도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북한은 현재 과거 동독과 같이 매우 강한 통일에 대한 갈망(渴望)을 갖고 있으며,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모든 것이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
<표2> 북한 주민들의 통일에 대한 갈망 11)

그러나 통일 이후 북한 지역에서의 산업화(産業化)와 자원 개발 과정에서 동독에서와 같은 사례로 인해 북한 주민들이 큰 피해의식과 열등감을 느낄 가능성은 매우 높다. 이는 비단 주민들 뿐 아니라 북한군 내에서도 발생할 문제이기도 하다. 더불어 군사통합이 실현된다면 과거 일반 주민들보다는 질이 좋은 음식을 배급받는 등 12) 상대적으로 특권계층의 대우를 받아온 군인들이 과거와 같은 지위를 유지하지 못하게 됨에 따라 불만을 갖게 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통일독일 군대 내에 남아있던 동독군은 동독군 출신에 대한 부정적 시각과 차별대우에 시달렸고, 이념 붕괴(崩壞)로 가치관이 와해(瓦解)되고 주요보직을 맡을 수 없도록 조치되어 스스로도 열등감에 사로잡히게 되는 경우가 발생했다.13) 북한군 역시 동일한 문제를 갖게 될 것이라 추정할 수 있다. 이에 더해 최근 북한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한류(韓流) 열풍 역시 북한군 내에서는 일반 주민들에 비해 큰 반향(反響)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북한군인과 남한군인의 괴리감(乖離感) 역시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14)
실제로 탈북자들이 남한 주민들의 편견(偏見)과 차별(差別)로 인해 적응하지 못하고 제3국으로 떠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음은 위 독일의 사례가 한반도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음을 나타낸다.15) 그렇다면 독일이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한 방법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다면 이 역시 한반도에서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동독과 서독간의 갈등 속에서 독일 정부가 내세운 것은 민족이었다. 독일 정부는 동독과 서독이 같은 민족임을 강조하였는데, 이 과정을 통해 동독과 서독이 동질성을 갖출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들은 동독이 피해의식을 품게 되는 근본적인 원인을 사회주의 체제의 결점(缺點)들로 인한 열등감을 느끼게 된 것으로 파악하였고, 이에 동독인들이 개개인적으로 열등감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서독인과 같은 민족임을 강조해 결국 너와 나는 다르지만 ‘우리는 하나다(Wir sind Ein Volk)’는 식의 민족간의 동질성 회복을 추구하였다.
이 과정에서 독일이 동질성을 회복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내세운 것이 바로 역사교육이다. 통일 독일정부는 역사교육을 통해 동독과 서독이 과거에는 통일을 통해 하나의 나라를 구성(構成)했었던 민족임을 인식시키고, 이들이 본래 각기 다른 체제를 갖추고 산 것이 아닌 하나의 나라를 이루고 살았음을 강조해 통일의 당위성(當爲性)을 높이고 서로가 하나라는 공동체의식을 강화시켰다. 이를 통해 독일은 동독과 서독의 갈등을 줄일 수 있었다.
2.2. 한반도 군사통합의 특수성
독일의 통일사례에서 나타난 동독과 서독의 문제점에 더해 한반도는 한반도 고유의 군사통합 과제를 가지고 있다. 이는 독일의 사례로는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우리민족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들로, 통일 후 군사통합 과정을 방해할 수 있는 핵심적인 요소들이다. 그 중 대표적인 요소들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는 한국전쟁을 들 수 있다. 한반도와 독일의 사례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한반도에는 남한과 북한이 서로를 주적으로 한 전쟁을 치룬 경험이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분단이후 체제의 차이로 인해 벌어진 한국전쟁과 천안함 피격(被擊), 연평도 포격 등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행해진 대남도발은 한국군과 북한군과의 갈등을 유발시켜왔다. 독일군과 달리 60년이 넘는 세월동안 서로를 주적으로 여겨 대적관(對敵觀)을 발달시켜온 한국군과 북한군이 통일이 되어 군사통합이 이루어진다 해서 순식간에 동화(同化)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국군과 북한군은 그 어느 곳 보다 서로를 향한 큰 적대감을 갖고 있는 군대로, 이를 통합시키기 위해서는 어느 때 보다도 막대한 비용과 노력이 요구될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는 바로 북한군이 지니고 있는 사상(思想)이다. 북한은 세계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정치교육 체제를 갖추고 있는 국가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특출난 것이 바로 유일사상이라 할 수 있겠는데, 북한은 북한 주민들의 삶 속에 김씨 일가에 대한 존경심을 신앙에 가깝도록 내면화시키고 있다. 어릴적부터 반복되어온 김씨 일가에 대한 숭배(崇拜) 사상은 북한군에서도 잘 나타날 것이며, 탈북자들의 사례에서도 드러나듯이 통일 이후 이들이 그동안 믿어온 사상과 김씨 일가에 대한 허황(虛荒)된 교육이 거짓임을 알게 되었을 때의 허탈감은 결코 간과(看過)할 수 없는 부분일 것이다.16)
오늘날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북한이 그토록 선전하고 있는 사회주의는 완전히 실패한 체제이다. 북한은 자신들이 지녀온 체제의 실상(實像)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해 자신들의 사상을 극도로 발달시켰고, 특히 자신들의 무력수단인 북한군에게는 사회주의 혁명을 정당화시키는 사회주의 교양, 무력적화통일(武力赤化統一)의 사명감(使命感)을 고취(鼓吹)시키고자 하는 계급 교양 등에 대한 추가적인 정훈교육을 통해 세뇌에 가까울 정도의 교육을 반복하고 있다. 17) 이러한 사상교육에 익숙해진 북한군에게 그동안 지녀왔던 가치관을 아무런 대책 없이 흔들어 대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방법일 수도 있다.
또한 남한과 북한이 서로에 대해 많은 정보를 공유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독일의 통일 과정에서 동독이 주도적으로 사회주의 정권을 몰아내고 통일을 요구하게 될 수 있었던 것은 동독인이 각종 매체를 이용해 얻은 정보를 통해 서독이 동독에 비해 나은 체제를 지니고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독은 서독의 실상에 대한 정보를 얻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던 만큼 자신들의 체제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서독보다 훨씬 못한 결과를 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를 동독 정권을 붕괴시키게 된 결정적인 원인으로 판단한 북한 정부는 독일의 사례를 교훈삼아 북한 주민들에게 남한에 대한 정보를 철저하게 통제시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은 과거부터 고등학교 지리 교과서에 “지난날 쌀고장으로 널리 알려졌던 남조선의 벌들은 날강도 미제침략자들의 군사훈련장으로 짓밟히고 있으며 남아있는 논밭들은 수리화가 되지 않아 해마다 큰물에 잠기고 가뭄에 말라터지고 있다”18)며 거짓된 정보를 통해 남한 사회를 왜곡되고 편파적(偏頗的)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오늘날 들어서도 확성기를 이용한 한국군의 대북(對北) 선전방송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등 북한 주민들이 남한 사회의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을 매우 꺼리고 있다. 이로 인해 북한 주민들은 남한 사회와 북한의 실상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얻을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어 체제의 변환이 이루어져야 할 충분한 동기를 부여받지 못하고 있으며, 통일이 된 이후에도 손쉽게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마지막으로 남한과 북한의 역사 인식 관점(觀點)의 차이를 들 수 있겠다. 서로 다른 정치체제에서 살아온 남한과 북한은 같은 역사를 교육하면서도 이를 서로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였다. 남한의 경우 한국의 과거사를 서술하는 과정에서 1980년대 민주화 경향에 따라 역사 교과서가 과거보다 자유롭고 객관적으로 쓰여지게 된 반면 북한의 경우 사회주의 정권 유지를 위한 이데올로기 주입에 유리하게 역사교육을 실시하였던 것이다. 특히 북한의 역사 교과서의 경우 주체사관(主體史觀)이 성립한 이후에는 학문적 과학성(科學性)과 객관성을 상실하고 정권 유지수단 및 찬양의 수단으로 전락하여 남한의 교과서와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19)
이에 대한 예로 1866년에 있었던 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살펴보면, 남한 교과서의 경우 이를 약 2줄 정도의 분량으로 짧게 기술하고 있으나 북한의 경우 이를 미국이 한반도에 본격적으로 침입한 것으로 규정해 5쪽에 걸쳐 상세히 묘사(描寫)함으로써 미국의 침략을 부각(浮刻)시키고, 이 과정에서 김일성의 증조 할아버지였던 김응우가 크게 활약해 미국 세력을 몰아냈다고 주장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오페르트 도굴사건에 있어서는 아예 독일인이 저지른 사건을 미국인의 만행으로 변조시켜 다음과 같이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를 파기 시작하였다. … 남연군의 묘를 파헤쳐 유골을 훔쳐낸 다음 그것을 미끼로 대원군에게 불평등한 통상조약을 강요하려던 초기의 계획이 실패하자 놈들은 영종동(인천앞의 섬)의 관리 신효철에게 봉건정부에 저들의 협박장을 전달해줄 것을 요구하였다. 20)
이를 통해 북한에서의 역사는 오늘날 사상교육의 강화를 꾀하거나 김씨 일가에 대한 존경심을 불어넣기 위한 도구로 활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같은 민족이라 할지라도 남한과 북한이 교육받아온 역사는 전혀 다른 성질(性質)의 것으로, 이는 향후 통일 과정에서 남북한이 한 민족으로의 동질감을 느끼는데 장애물이 될 수 있는 여지를 만들고 있다.
그러나 한민족으로서의 동질감은 새로운 통일한국군의 형성을 원활하게 만드는 필수적 요소이다. 따라서 통일한국군 내에서는 북한군에 대한 새로운 역사교육을 바탕으로 이들이 한국군을 더 이상 적의(敵意)의 대상이 아닌 함께 도와야 할 한민족임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제3장 통일한국의 군사통합 방안 : 정신교육
3.1. 통일한국군 정신교육의 필요성과 방향
통일 한국에서 실시되는 군사통합의 성공여부는 북한군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정신교육이 얼마나 큰 효과를 갖는지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이미 언급되었던 다양한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향으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한반도의 군사통합 과정에서 이루어져야 할 교육의 방향은 다음과 같다.
우선 진정한 의미에서의 군사통합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북한군 스스로가 대한민국 체제에 동화되고자 할 수 있도록 돕는 방향의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통일 한국군이 신속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군사통합을 실현해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북한군이 스스로 한국군에 통합(統合)되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며, 이는 군사통합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마찰(摩擦)을 최소화시키기 위한 과제이기도 하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먼저 통일 이전 북한 사회주의의 실태(實態)를 알려줄 필요가 있다. 그간 북한이 행해왔던 김씨 일가에 대한 숭배 행위의 실상, 조작되어있던 남한 사회의 진실 및 국제 사회의 평가 등 자신들이 그동안 믿어왔던 북한 정권이 실제로는 잘 포장된 거짓에 불과하다는 것을 확실히 인식시켜주어야 한다. 북한군에 내재(內在)된 불안요소의 근본적인 원인은 이들이 변화된 삶이 더 나을 것이라는 확신(確信)을 갖지 못함에 있다. 따라서 북한의 실상을 알려주고 이어질 한국의 사상교육을 통해서 북한군이 통일한국의 체제를 따름으로써 더 나은 사회에서 살게 될 수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줘 기존의 사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정치체제에 적응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게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새로운 통일한국의 정치체제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북한의 정치체제의 실상에 대한 교육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바로 통일한국의 정치체제 교육이다. 북한군이 자발적으로 군사통합에 앞장서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북한군 스스로가 대한민국의 체제에 흡수되는 것이 자신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데 있다. 이를 위해서 행해야 할 교육으로는
첫째, 시장경제체제가 북한 주민들에게 기존에는 존재하지 않던 기회의 장을 열어주는 시스템임을 가르쳐야 한다. 북한 정권의 지배 하에서 이루어졌던 공산주의는 몰락(沒落)하여 실패로 끝났지만 새로이 받아들이게 될 시장경제체제는 더 노력하는 자에게 더 큰 대가를 선사하는, 개개인의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더 많은 성과(成果)를 얻을 수 있는 체제임을 알려줌으로써 자신의 행동에 따라 기존에는 가질 수 없었던 수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음을 알려주어야 한다. 이를 통해 기존의 북한 사회와 달리 통일 한국에서는 개인이 노력한다면 얼마든지 윤택(潤澤)한 삶을 누릴 수 있음을 깨달아 스스로 군사통합에 참여하는 동기(動機)를 부여시킬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대한민국이 민주주의(民主主義)와 헌법(憲法)에 의해 운영되는 국가임을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 과거 북한의 경우 일당(一黨) 독재(獨裁)사회로 운영되면서 개인, 혹은 당의 이익에 따라 사회 전체가 피해를 보는 사례가 있어왔다. 이러한 사회에서 살아온 북한군에 있어 대한민국에서 표방(標榜)하는 헌법을 통해 국가의 주인이 국민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체제이념을 선포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당한 사유, 적법(適法)한 절차(節次)와 규정(規程)을 거치지 않고서는 국민에게 그 누구도 어떠한 간섭(干涉)도 행할 권리가 없다는 사실은 북한군에게는 굉장히 생소(生疏)한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이 자유 민주주의 국가의 근본적인 이념(理念)이자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임을 인식시켜 통일 한국의 정치체제가 과거 공산주의와는 달리 개개인의 사생활을 보장하고 다양한 개성을 인정하는 다원적(多元的)인 사회임을 교육해야 한다.
셋째, 이와 동시에 통일한국은 능력이 부족한 사람도 최소한도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할 제도적(制度的) 장치를 구비(具備)하고 있음을 교육해야 한다. 이로써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적절한 일자리가 주어지고, 능력이 부족한 자에게도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음을 북한군에게 인지시켜, 통일의 궁극적 목적이 통일한국 구성원인 우리 모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있음21) 을 알려야 한다. 결과적으로 북한군은 통일을 통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에서 개인의 존엄성(尊嚴性)과 행복이 보장되는 사회를 이룰 수 있음을 깨닫고, 이 과정의 일환으로 군사통합이 이루어져야 함을 스스로 인지해 자발적으로 군사통합에 힘쓸 수 있도록 해야한다.
3.2. 북한군의 통일한국군화 정신교육 과목
이러한 방향성을 바탕으로 꾸려나가야 할 정신교육 과목을 다음과 같이 제안하는 바이다.
3.2.1. 올바른 통일한국사 교육(Korean History)
통일한국사 교육은 한국군과 북한군 사이에 존재하는 사회적, 역사적 적대감을 해소시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독일의 선례(先例)를 통해 우리는 올바른 역사교육이 행해진다면 한민족간의 공동체의식이 다시금 형성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통일한국사 교육은 기존의 북한군이 배워왔던 역사적 교육의 폐해(弊害)를 지적하고, 올바르고 객관적인 역사지식을 함양시킴과 동시에 한반도가 오래전부터 한민족 공동(共同)의 생활터전이었음을 알려주는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3.2.2. 민주주의의 역사(History of Democracy)
태어날 때부터 통일 직전까지 유일사상에 대해 배워왔고, 한국에 대한 지식을 얻을 기회를 전혀 갖지 못했던 북한군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바로 통일한국의 정치체제가 될 민주주의에 대한 올바른 이해이다. 따라서 통일이 이루어지게 된다면 통일 한국은 최대한 신속히 민주주의가 가진 체제의 우월성(優越性)과 자유로움을 교육시켜 북한군이 타인의 강요나 일방적 요구가 아닌 스스로 대한민국 체제에 흡수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제반 여건(諸般與件)을 조성하기 위해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을 실시해야 할 것이다.
3.2.3. 시장경제체제의 우월성
수십 년간 이어져 왔던 북한의 공산주의체제는 오늘날까지도 최악의 결과를 낳고 있음이 잘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은 지금까지도 자신들의 체제가 그릇된 결과만을 낳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남한, 미국에 대한 거짓되고 통제된 정보만을 받아들이고 있다. 따라서 통일한국군의 북한군 교육과정에서는 북한군을 대상으로 그동안 그들이 받아들여 왔던 계획경제체제(計劃經濟體制)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역사적으로 최악의 결과만을 빚어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면서 반대로 시장경제체제가 가져온 발전에 대해 설명해주어 새로운 체제를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최소화시키고 자발적인 흡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3.2.4. 헌법학(Constitution)
일당 독재체제로 이루어져왔던 북한에서는 김씨 일가, 공산당 등 개인이나 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수많은 주민들이 행동하거나 심지어는 북한군 자체 까지도 동원되는 경우가 종종 있어왔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그러한 행위가 인정되지 않는 합리성(合理性)과 헌법에 의해 운영되는 국가이다. 대한민국은 대한민국 헌법 제 1조 2항에서 밝히듯이 주권(主權)을 국민에게 두고 모든 권력이 당이나 개인이 아닌 국민에게서 나오는 민주주의 체제를 갖추고 있다. 따라서 대한민국은 북한과 달리 개인, 혹은 하나의 집단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지 않으며, 이를 바탕으로 국민 개개인이 누려야 할 자유와 권리를 보장한다. 이는 스스로를 ‘당의 군대’의 일원으로 생각해왔던 기존의 북한군의 행동양식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것으로, 이들에게 필수적으로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원칙인 헌법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라 할 수 있다.
3.2.5. 도덕
자유경쟁이 보장되는 시장경제체제를 받아들인 통일 한국은 이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서로가 무한한 경쟁을 일삼는 밀림과 같은 가혹한 세계처럼 여겨질 수 있다. 따라서 통일한국의 이념이 서로를 견제(牽制)하고 극복하고자 하는 장애물로 인식하기 위함이 아니라 능력있는 자에게 많은 기회를 보장함과 동시에 능력이 부족한 자를 소외(疏外)되게 하지 않고자 하는 것임을 교육시킬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북한군이 최우선적으로 익혀야 할 과목이 바로 공동체에서의 도덕이다. 소외받은 사람을 서로 돕고 사는 사회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새로운 사람들이 기존 공동체의 생활양식과 미풍양속(美風良俗)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북한군에게 통일한국 공동체의 생활양식과 기본적 예절, 도덕등을 학습시켜 이들이 원활하게 한국군이라는 울타리 안에 들어올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3.2.6. 북한학: 북한체제의 허구성
앞에서 밝혔던 것과 같이 현재 북한군이 받아들이고 있을 북한체제에 대한 잘못된 지식은 북한군의 신속한 통일한국군화를 저해(沮害)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따라서 북한군은 그동안 배워왔던 북한 사회의 유일사상, 주체사상의 허무맹랑함과 북한 사회가 품어왔던 문제점의 실태, 이데올로기 주입을 위해 왜곡된 역사교육이 있어왔던 사실 등을 교육해 북한군이 스스로 북한 사회에 등돌려 통일한국의 체제로 흡수될 수 있도록 이끌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교육과정에서 교육자가 기억해야 할 핵심적인 사항은 모든 교육들이 일반적인 남한 국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 아닌 전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북한군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임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군은 지금껏 우리가 받아왔던 교육과는 전혀 다른 것을 배워왔던 성인들이며, 따라서 우리로써는 당연하다 여길 수 있는 부분이 이들에게는 경험해보지 못한 사안일 수 있음을 간과(看過)해서는 안 된다. 이에 교육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이들의 이해가 결코 쉽지 않을 것임을 자각(自覺)하고, 완전히 기본적인 부분부터 충실하게 가르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이 모든 교육이 결과적으로는 북한군에게 지식을 심어주기 위한 목적이 아닌, 이들이 자발적으로 한국군에 흡수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제반과정(諸般課程)임을 인지해야한다. 따라서 교육방식에 있어서는 텍스트를 위주로 하는 강의식 수업보다는 사진자료나 동영상 등을 활용한 보여주기 식 수업, 또는 시장경제체제를 이해하기 위해 직접 시장을 방문하거나 국회의사당을 견학하는 시간을 갖는 등 현장학습 식 수업 위주로 교육을 진행해 이들이 모든 교육과정을 단순히 지식을 쌓기 위한 과정이 아닌 통일한국이 어떠한 모습인지를 이해하는 과정임을 알 수 있도록 해야할 것이다.
더불어 피교육자에 대한 필기시험, 구술 면접 혹은 기타 수단 등을 이용한 피드백과정이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이 피드백과정을 통해 피교육자가 지난 교육과정으로 인해 완전히 통일한국군에 흡수될 준비를 마쳤는지를 점검하고, 만족스러운 결과를 도출하는 피교육자는 통일한국군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하되 그러지 못한 인원에 대해서는 추가 교육, 전역 등의 조치가 필요할 것이다.
제4장 결 론
한반도의 통일은 반백년이 넘는 세월동안 한민족의 가장 큰 과제로 남아있으나, 이를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여전히 수많은 장애물이 남아있다. 그 중 군사통합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북한군이 통일을 남한의 일방적인 흡수통합이라고 느끼지 않게 해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군사적 측면에서의 통합이라는 점에서, 남한 군제(軍制)로의 일방적(一方的) 통합은 북한군에게 결국 동독이 느꼈던 것과 같은 열등감과 피해의식을 불러일으키게 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장차 이루어질 통일의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통일한국군 교육은 북한군이 통일이 되는 과정에서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군사통합에 참여할 수 있도록 준비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한반도의 군사통합은 어떠한 과정으로 이루어져야 하는가? 그 중에서도 어떠한 교육을 통해 이루어져야만 군내에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을 최소화시킬 수 있는가? 이에 대해서 지금까지 여러 방향을 제시하였으나 이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 북한군의 통일한국군화는 북한군이 기존 사회체제의 실패를 인정하고, 지금과 같은 다름이 있게 된 배경을 이해함과 동시에 한국군을 향한 열등감 없이 동화되려 할 때 이루어질 수 있다. 이 같은 과정을 거치지 않고 단순히 구조적으로 행해지는 군사통합은 말 그대로 물리적(物理的) 의미에서의 통합에 불과할 것이다. 따라서 이를 내면화(內面化)시키기 위해서는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지게 된 근본적(根本的)인 원인에 대해 교육하고 또 이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한 방안으로 독일의 선례를 따라 새로운 역사교육의 필요를 주장하는 바이다. 통일한국사에 대한 교육을 통해 북한군과 한국군은 서로를 엮어줄 새로운 동질성을 줄 수 있는 접합점(接合點)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2. 통일이 이루어지는 것이 결과적으로 북한군에게 이득(利得)이 되는 일임을 주지시켜 주어야 한다. 한 민족이기 때문에 당연히 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등의 감정과 민족성에 호소(呼訴)하는 교육에는 어쩔 수 없는 뚜렷한 한계가 존재한다. 결국 북한군을 실질적으로 설득시킬 수 있는 것은 그들이 군사통합에 참여해 통일한국군의 일원이 되는 것이 스스로에게 도움이 되는 것임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그간 그들이 살아온 북한 사회의 모습과 대비(對比)되는 한국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법적 제도가 정비되어 있고, 능력이 있는 자에게는 일자리와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며 능력이 부족한 자에게도 인간적인 삶을 보장하는 한국 사회의 모습이 그들에게 스스로를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 함께하고 싶은 곳으로 느끼게 하여, 내면으로부터 우러나는 군사통합으로의 참여의지를 발현(發現)시켜야 할 것이다.
이러한 방향으로 향후 북한군에 대한 정신교육을 진행하기 위해 본 논문에서는 한반도의 예상 통일 시나리오와 가장 유사성(類似性)이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 독일의 사례를 참고함과 동시에 한반도 통일이 가질 특수성(特殊性)을 고려하여 군사통합 과정에서의 정신교육 방안을 제시하고자 하였으며, 아울러 이를 바탕으로 향후 원활한 통일한국의 정신전력 증강(增强)을 위해서는 어떠한 방향의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지를 알아보고자 하였다. 본 논문이 향후 통일한국의 군사통합 과정에 있어서 의미 있는 시사점(示唆點)이 되었으면 한다.









1) 김광열, 「남북한 군사통합- 갈등 요인과 대책」 (한국정치외교사학회, 2002); 김동명, 󰡔독일군사통합 사례를 통해 본 남북군사통합 방안에 관한 연구󰡕 (한국군사문제연구원, 2012); 김인연, 「통일한국의 적정 군사력 건설에 관한 연구」(경희대학교 행정대학원, 2002); 노훈, 「통일한국의 필수 군사력소요 및 건설방향」(한국국방연구원, 2001), pp.151–192; 박영한, 「남북 군사통합시 독일모델 적용 가능성 연구」(국방정책연구보고서, 2005); 박재하, 「이상적인 인력 모델링에 의한 남북한의 군축인력 규모 분석」, 『국방논집』 제16호 (1991), pp.59-79; 손한별, 「남북한 군사통합과 연구쟁점」, 『전략연구』제63호 (2014); 신봉철, 「독일 통일과정과 정치교육에 대한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2009); 하정열, 󰡔한반도 통일후 군사 통합 방안: 독일 군사통합과정과 교훈󰡕 (팔복원, 1996).
2) 여기에서 말하는 합의적 흡수통합이라 함은 평화적으로 통일하되, 쌍방이 서로 합의된 상태에서 어느 한쪽이 병렬하여 존재하지 않고 다른 한 쪽에 완전히 흡수되어 통일이 이루어지는 방안을 말한다. 대표적 사례로 독일의 군사통합을 들 수 있다. 권양주, 󰡔남북한 군사통합 구상󰡕 (서울: 한국국방연구원, 2014).
3) 강제적 흡수통합이란 전쟁 또는 무력개입에 의한 통일상황으로, 피합병국의 무조건적 굴복과 무장해제가 이루어지며 주도국 군제중심의 군사통합이 이루어지고 피합병국의 군제의 폐기 및 관련 자산에 대한 보상을 고려하지 않는 군사통합 유형을 말한다. 대표적 사례로 베트남의 군사통합을 들 수 있다. 최기하, 「군사통합의 경험과 통일 한국에서의 적용방안」(광주: 조선대학교 정책대학원, 2003), p.10.
4) 강제적 흡수통합이란 전쟁 또는 무력개입에 의한 통일상황으로, 피합병국의 무조건적 굴복과 무장해제가 이루어지며 주도국 군제중심의 군사통합이 이루어지고 피합병국의 군제의 폐기 및 관련 자산에 대한 보상을 고려하지 않는 군사통합 유형을 말한다. 대표적 사례로 베트남의 군사통합을 들 수 있다. 최기하, 「군사통합의 경험과 통일 한국에서의 적용방안」(광주: 조선대학교 정책대학원, 2003), p.10.
5) 신봉철, op. cit, p.131.
6) Gordon, “German Unification and the Bundeswehr”, p.29. 최기하, 「군사통합의 경험과 통일 한국에서의 적용방안」(조선대학교 정책대학원, 2003), p.21에서 재인용.
7) 박영한, op. cit, p.49.
8) 이영란, 「통일 이후 동독지역 주민의 상대적 박탈감」, 『한국사회학』제39권 (2005), p.152.
9) 한국일보, 1995. 1. 17.
10) 신봉철, op. cit, p.141.
11)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북한주민의 통일의식조사 2011』.
12) 안영길, 『탈북인사대담30: 북한군인들의 생활실태-어렵고 힘든 일에는 군대가 투입된다』(평화문제연구소, 1998), p.55.
13) 최기하, 「군사통합의 경험과 통일 한국에서의 적용방안」(조선대학교 정책대학원, 2003), p.29.
14) 현재 북한군 내에서는 북한 주민들에게 가해지는 것보다 훨씬 강력한 수준의 외부 정보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북한군이 남한의 문물에 사로잡히게 될 경우 찾아오게 될 반향이 매우 클 것이라 판단한 북한 수뇌부의 보호조치로 판단된다. 김병욱 외, 「외부 사조 유입과 북한군 의식변화 실체」, 『통일정책연구』 제22권 2호 (2013), p.37.
15) 최윤형, 「“대한민국은 우릴 받아줬지만 한국인들은 탈북자들을 받아준 적이 없어요“」, 한국광고홍보학부 2013년 가을 제 15권 3호 (2013), p.188.
16) 조용관, 「북한 정치교육의 내면화가 탈북자 남한사회적응에 미친 영향」, 『한국정치외교사논총』 25 (2004), p.167.
17) 제정관 외, 『통일과 무형전력』(국방대학교 안보문제연구소, 2002), p.81.
18) 배장오, 『남북 및 남남 갈등시대의 통일교육론』(서현사, 2015), p.236.
19) 정영순, 「남북한의 역사인식 비교 연구」, 『사회과 교육 Social Studies Education』제45권 1호 (2006), p.30.
20) 『조선력사』 5, p.66-68.
21) 통일부 통일교육원, 『2014 통일문제 이해』 (통일부, 2014), p.253.
참 고 문 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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