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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 폭파사건 김현희 자술서 全文
  • 이철구 기자
  • 승인 2012.09.17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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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 폭파사건 범인 김현희의 자술서 全文

남조선 비행기 KAL 858기 폭파노정에 대하여 말씀드리면, 제가 앞에서 말씀드린 남조선 비행기 KAL 858기 폭파 임무 계획에 따라 19871112일 목요일 아침 630분 우리는 (최과장 김선생과 저) 응접실에 올라가서 선서모임을 하였다.

선서모임에서는 저가 최과장이 써준 맹세문을 낭독하였다. 선서모임이 끝난 후 우리는 아침식사를 하였다.

7시경 우리는 초대소를 떠났다. 순안 비행장에 도착한지 얼마 안되어 부부장이 차를 타고 나왔다. 최지도원이 비행기 출국소속을 다 끝내가지고 돌아온 후 우리 일행 4(최과장,최지도원,김선생,)은 부부장의 바래움을 받으며 비행기에 탑승하였다.

이날 830분경 출발하는 조선항공기는 평양~모스크바 경유~동부베를린으로 가는 첫 개통 비행기였다. 그래서 비행기 안에서는 이전에 비해 봉사가 높았고 선물(트럼프,열쇠고리,돈지갑)들을 주었다.

모스크바에 12,18시경에 도착하였다. 모스크바 주재지도원이 마중나와 우리를 주모스크바 조선대사관의 초대소에 안내하였다.

주재지도원의 말에 의하면 12일밤 12시경에 부다페스트로 가는 비행기 편이 있으니 그편으로 가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날 못가면 며칠동안 모스크바에서 기다려야 한다고 이야기 하므로, 우리는 거기서 저녁식사를 한 후 23시경 그곳을 떠나 모스크바 비행장을 나왔다.

24시가 좀 지나 소련 비행기 (모스크바~부다페스트)를 타고 13일 새벽 4시경 부다페스트에 도착하였다.

부다페스트에 도착하니 이미 모스크바에서 연락이 있었음으로,V주재지도원이 마중 나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차를 타고 우리는 그의 집 (조사부 초대소)에 가서 행장을 풀고 휴식하였다.

식사는 매끼 그 집 아주머니가 만들어 주었다. 도착한 다음날 (14)우리는 김선생만 휴식하게 집에 남겨두고 시내에 나와 시내 관광을 하였다.

지하철을 타고 시내를 여행했다. 15일은 주재 지도원의 안내로 그의 차를 타고 부다페스트의 관광지들을 돌아보았다. 즉 부다페스트광장, 사자다리.부따외 궁전 등....

16일도 역시 시내를 다니며 참관하고 사진을 찍었다. 17일 저녁 힐튼호텔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18일 출발 준비를 하였다.

그리고 주재 지도원의 말에 의하면, 빈 입국은 자동차로 하는 것이 좋으며 비행기편이 더 검열이 심하다고 하였다. 그래서 17일날 비행기로 빈에 입국하려던 계획을 바꾸어 최과장과 최지도원은 기차로,김선생과 저는 지도원의 승용차(벤츠)를 타고 빈에 입국하기로 결정하고 두사람의 기차표만 구입하였다.

18일 아침 8시경 최과장과 지도원은 역으로 나가고 우리 두 사람을 태운 주재 지도원차는 부다페스트 국경선을 넘어 빈으로 입국하였다.

국경초소에서의 출국.입국 검열은 아주 간단하였다. 조선여권에 출국도장을 찍어주고 빈 입국시에는 도장도 찍지 않고 여권을 한번 보고 통과시켰다. 통과 후 우리의 조선여권을 지도원에게 넘겨주고 일본여권을 받았다.

이날 13시경 빈의 남역에 도착한 후 지도원은 차를 타고 돌아갔다. 남역에서 호텔 (AMPAKING) 예약을 김선생이 해가지고 돌아온 다음 우리는 택시를 타고 호텔로 갔다.

이날은 자동차로 몇시간 달린 것으로 몹시 피곤하였기 때문에 호텔에서 간단히 식사하고 휴식하였다.

19일 오전 10시경 김선생과 저는 오지리 비행기 회사에 가서 미리 연구된 계획에 따라 비행기 전 노정에 대한 예약을 하였다. 그 후 호텔에 서 받은 관광지도를 따라 시내를 돌아 보았다. 시내중심인 오페라 극장과 그 주변 시내를 관광하고 오후에는 오지리 비행기회사에 가서 비행기표를 구입하였다. 20일에는 이탈리아 항공사에 가서 아부다비~암만경유~로마행 비행기표를 구입하였다.

21일에는 빈의 가장 중심거리이며 화려한 쇼핑거리를 돌아보며 나의 원피스1벌과 겨울용 양말,목걸이,귀걸이 등을 사서 장비품을 보충하였다.

22일 오전에는 휴식을 한 다음에 오후에 김선생이 오지리 주재 조선대사관에 전화를 걸어 최과장을 찾아 베오그라드에서 27일 저녁7시 메트로폴 호텔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였다.

23일 오전 11시경 우리는 천천히 호텔청산을 마치고 택시를 타고 비행장으로 나갔다.

비행장 출국수속을 마치고 14시경 탑승하여 18시경 베오그라드에 도착하였다. 택시를 타고 메트로폴호텔에 도착하여 휴식하였다.

24일 우리는 전차를 타고 시내관광을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25일도 중심거리 사원들을 광광하며 세타1개를 샀다. 26일 오스트리아 항공사에 가서 비행기표 (로마~)을 구입하였다.

27일 저녁7시에 호텔 정문에서 최과장과 최지도원을 만나 함께 호텔방에 올라갔다. 방에서 10분간 최과장은 가지고 온 폭파용 라디오와 약주를 넘겨주고 우리가 가지고 다니던 여행용 가방1(기타 불필요한 물건을 넣었다)를 가지고 떠났다.

28일 아침은 호텔에서 휴식하고 오전 11시경에 호텔 청산을 끝내고 비행장으로 나갔다.
비행기는 예정된 대로 오후 1435분에 출발하였다. 비행기는 베오그라드를 떠나 약 3시간 30분간 비행하고 저녁 7시경에 바그다드에 내렸다. 그런데 이때 이라크 비행기로 탔었는데, 비행기를 탈 때 모든 소지품의 전지약(바테리)을 승무원들이 검열하여 몰수했다가 바그다드에 착륙한 다음에야 돌려주었다.

비행장안의 의자에 앉아 잠깐 기다리면서 김선생이 라디오에 바테리를 넣었다. 그런데 비행장 여안내원이 갈아타는 손님들을 데리고 갈아타는 홀로 가서 남녀 각각 모든 손짐과 몸수색을 하였다.

이때 라디오 안의 바테리가 문제가 되었었다. 왜냐하면 바그다드 공항의 원칙이 바테리라는 물건은 일체 가지고 비행기에 오를 수 없다는 것이다. 거기서 김선생이 여기서만 특별히 개인 사품을 검열하고 단속한다고 하며 라디오를 켜보이며 항의하자 그들도 좀 미안하지 가지고 가라고 승낙하였다. 검열이 끝난 후 비행기표 체크인을 하러 가는 도중 두 번째로 검열을 받았다. 그 때는 저가 이미 라디오를 김선생에게 맡겼었는데 모든 검열이 무사히 끝났다.

체크인까지 하고 보딩 카드를 받은후 홀에 들어가 앉아서 탑승시간을 기다렸다. 탑승 20분전에 김선생이 라디오의 동작 스위치를 고정 시간인 9시간 후로 맞추었다.

비행기는 바그다드에서 282335분에 출발하였다. 비행기에 올라 저는 보통석 앞에서 2번째(왼쪽)줄 가운데 앉고 왼쪽 옆에는 서구인 여자 1, 오른쪽에는 김선생이 앉았다. 비행기에 탑승하면서 김선생은 그의 여행용 가방 1개와 폭파용 라디오와 약주병,기타 담배등이 들어있는 비닐 주머니를 의자위의 선반에 올려놓았다.

잠시후 음료수와 식사가 왔다. 식사 후 서구여인과 내가 먼저 변소를 갔다가 오고 10분 후에 김선생이 화장실에 갔다 왔다. 20~30분 졸다가 비행기가 아부다비에 도착한 후 우리는 그 폭파물이 든 비닐 주머니를 선반 위에 그대로 남겨둔 채 나의 여자용 가방과 김선생의 여행용 가방만을 들고 내렸다.

그런데 비행기에서 내려 아브다비 공항에 들어설 때 그곳 항공 안내원이 갈아타는 비행기표를 보자고 하였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베오그라드~바그다드~아브다비~바레인행 비행기표를 보였다.

아브다비는 일본여권으로는 통과밖에 할수 없게 되어 있으며, 출국은 비자가 없어서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비팽기표로 통과하는 것을 보여야지 다른 비행기표(즉 계획했던 아브다비->로마행)를 보 일 수가 없었다.

그곳에서는 친절성을 베풀어 여권과 비행기표를 자기들이 건사했다가 아침 9시경이 다 되어서야 바레인으로 떠나는 편을 체크인해서 보딩카드를 주었다. 이렇게 돼서 사실 위장노정으로 설정되었던 아브다비~바레인행을 이용할 수 밖에 없었다.

29일 아침 9시 바레인행 비행기를 타고 2시간후인 11시경 바레인에 도착하였다. 공항에서 미달러 30원을 내고 3일간의 임시사증을 받았다. 그곳에서는 호텔예약이 되어 있지 않아 공항에 있는 전화소에서 전화로 호텔을 찾았으나 좀처럼 통화가 안 되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공항경찰 한 사람이 다가와 우리 대신 전화를 걸어 리젠트 호텔을 찾아 통화시켜 주었다.

김선생이 전화로 방 예약을 한 다음에 우리는 택시를 타고 리젠트 호텔에 도착하여 방에 들었다.

그날은 휴식하고 다음 날인 30일 시내를 관광하며 김선생이 쇼핑(와이샤스 1)을 하였다. 그리고 알리아 항공사에 가서 그전에 예약했던 아브다비~로마행 비행기표를 다음날 1일 출발 바레인~암만경유~로마행으로 바꾸었다.

오후에는 택시를 타고 바레인을 관광하며 사진을 찍었으나 날이 어두워서 바깥에서 식사()를 사가지고 돌아왔다. 호텔방에 돌아와 얼마 안되어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하였다.

1차 전화 = 호텔 쪽에서 여권 이름 생년월일 번호 등을 물었고, 2차 전화 = 한국인이 전화를 걸어왔고, 3차 전화 = 일본 대사관에서 여권에 대해 물었다. 4차 전화 = 한국인이 방에 찾아 오겠다고 하였다.

잠시 후 한국 외교관이 방에 찾아왔다. 그는 김선생과 마주 앉아 말이 통하지 않아 일어(日語) 몇 마디에 영어 등을 섞어 가며 KAL 858이 떨어진 데 대해 설명하였다. 그때 나는 김선생 분부대로 피곤해서 자는 척 하였다.

그가 돌아간 후 김선생은 말하기를 KAL이 분명히 떨어진 모양이다. 그리고 그게 문제로 된 것 같다. 걱정 말고 잠을 자고 내일 떠나면 된다고 하였다.

121일 아침 7시경에 일어나 바삐 떠날 준비를 하였다. 그때 김선생이 독약 앰풀이 든 담배갑 1개를 나의 가방에 넣어 주었다. 늦잠 잔 탓에 아침 식사도 못하고 허둥지둥, 또 좀 당황한 마음으로 호텔 청산을 다 마치고 택시로 비행장에 도착하였다.

먼저 체크인을 하고 출국카드를 쓴 다음 출국 검열소를 통과할 때 한 남자가 우리의 여권과 출국카드를 몰수하며 좀 기다려야겠다고 말하였다. 이윽고 일본 대사관 직원 (남자) 1명이 다가와서 여권이 위장여권이라는 것이 판명 되었으니, 이대로는 여행을 계속할 수 없기 때문에, 일본 대사관에 가서 일본 비행기로 일본에 돌아가야 겠다고 말하여 여권을 주지 않았다.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며 김선생이 말하기를 이제는 모든 것이 끝장이다. 일본에 보내도 우리는 이래저래 고생하다가 죽게 도는데 여기서 약을 먹어야 한다고 하였다.

이때 바레인 경찰들이 와서 우리를 각각 다른 방으로 데리고 가서 손짐과 몸수색을 깐깐히 하였다. 몸수색이 끝난 후 김선생과 의자에 나란히 앉아 있는데 (물론 옆에 앞에 경관들이 있었다)김선생이 담배를 피우며 나에게도 담배를 한 대 주었다. 그래서 피우려고 하는데 한 경찰이 나의 손가방을 몰수하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나의 담배(앰풀이 들어있는 담배) 갑만을 꺼내서 들고 가방을 넘겨주었다. 그러자 이때 여자 경찰관이 담배검사를 잊은 것이 생각났던지 나의 담배를 달라고 하였다.

그래서 김선생을 쳐다보자 김선생 역시 주지 말라는 의사였다. 급한 정황에서 그 경찰관의 손에 들린 담배를 빼앗다 힐터부분을 깨물었다. 그 후 정신을 잃었다.
19871228
진술인 김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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