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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조국이 부르면 달려가겠다"…끝없는 우국충정
조승배 옹, 참전 62주년 맞아 80년 인생역정 회고
6·25 참전 재일 학도의용군 조승배 옹. 태극기에 참전을 희망하는 혈서를 쓴 뒤 동료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들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재일 학도의용군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생존자들이 해마다 7~8명씩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이들의 우국충정이 근대사에 제대로 기록되기를 바랍니다."
6·25가 터지자 일본 메이지대 농학과에 다니던 조승배(80) 옹은 학업을 중단하고 조국을 구하려고 대한해협을 건넜다. 재일동포 학도의용군 참전자 642명 가운데 당시 18세로 나이가 가장 적던 그는 생존한 선배들로부터 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재일학도의용군동지회를 이끌어달라는 성화에 못 이겨 사무총장직을 9년째 맡고 있다.
27일 인천 수봉공원의 재일 학도의용군 참전기념탑 앞에서 참전 62주년 기념식을 치른 조 옹은 28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조국의 부름을 받고 달려와 총탄에 산화한 영령들을 기억하고 역사에 제대로 기록해 후손에게 바르게 알려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그러면서도 백발이 성성한 팔순의 나이에도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자신 있게 말했다.
"참전을 후회한 적은 없어요. 우리들의 이야기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채 잊혀가는 것이 가장 안타깝습니다. 몸은 늙어 기력이 쇠했지만 지금도 조국이 부르면 달려나갈 각오가 돼 있습니다."
조 옹은 일제 강점기에 중국에서 태어나 12세 때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갔다. 1945년 해방을 맞은 후 일본에 가족과 남은 그는 조국이 부강해지려면 선진 농업 기술을 익혀야 한다는 아버지의 권유로 메이지대 농학과에 입학했다.
조국 근대화를 꿈꾸며 학업에 열중하던 그에게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전쟁 발발 3일 만에 수도 서울이 점령당했다는 비보가 날아들었다. 일본 전국에서 1천명이 넘는 재일동포 청년과 학생이 참전 의사를 표시했다. 조 옹도 가족과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참전 의사를 밝혔다.
"그때는 애국심 하나로 가슴이 뜨거웠던 시기예요. 일본과 국교가 회복되기 전이라서 주일 대표부를 찾아간 학생들과 함께 태극기에 참전을 희망하는 혈서를 써서 전달했지요."
그는 1950년 재일 학도의용군 선발 1진 76명과 함께 미8군 소속으로 참전했다. 9월 12일에 전함을 타고 요코하마에서 출항했는데 도착할 때쯤에야 인천 앞바다라는 것을 알았을 정도로 당시 인천 상륙작전은 극비리에 진행됐다. 북한군을 속이기 위해 처음에는 태평양으로 향하다가 중간에 뱃머리를 돌렸다고 한다.
"참전할 때는 이미 국군은 대구 근방까지 밀려났고 조국은 북한의 손아귀에 넘어갈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여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최후의 저항이 될지도 모른다는 비장한 각오를 다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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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 학생들은 6·25가 터지자 주일 대표부를 찾아가 참전을 희망하는 혈서를 태극기에 써서 전달했다. 뒷줄 왼쪽에서 세번째가 조승배 옹.
조 옹은 인천 상륙작전과 같은 직접적인 전투 참가 외에도 경계근무 지원, 탄약 운반, 후방지역 선무활동 등 다양한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동료들은 격전이 벌어진 전장에서 52명이 전사했고 83명은 행방불명되는 희생을 치렀다.
동료 265명은 한국전쟁 중에 부대 순환 배치 등의 이유로 1951년 1월부터 일본으로 귀환했지만 나머지 242명은 1952년 4월 체결된 미·일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으로 주권을 되찾게 된 일본이 입국을 거부해 한국에 남게 됐다. 조 옹은 잔류한 사례다.
"일본 정부는 조약 체결 이후 재일 학도의용군을 '일본에서 허가받지 않고 임의 출국한 자'로 규정해 재입국을 거부했습니다. 우리는 가족과 생이별을 겪어야 했지요."
한국에 남은 의용군들은 1951년에 재일학도의용군동지회의 전신인 '재일한교학도의용대'를 설립해 서울 인사동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줄기차게 일본으로의 귀국을 정부에 요청했다. 그러나 한일 국교 정상화 이전이라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았다.
귀환길이 멀어지자 홀로 모국에서 정착을 위해 힘겨운 삶을 이어가던 조 옹은 1959년 두 번째 조국의 부름을 받았다. 북한이 일본에서 획책하고 있는 재일동포의 북송을 저지하는 공작에 참여해 달라는 것이었다.
당시 북한은 전쟁으로 인해 손실된 노동력을 벌충하고 체제를 선전하기 위해 일본 조총련을 통해 재일동포의 북송을 추진했다. 일본 역시 재일동포의 존재를 탐탁지 않게 여기던 터라 한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북송을 도왔다.
북송저지 공작대를 만든 치안국은 일본 사정에 밝고 일본어가 능숙한 재일 학도의용군이 공작대원으로 적합하다고 판단했던 것. 41명이 최종 선발돼 서울 우이동 계곡에서 훈련을 받았다.
"우리는 '한 번만 더 애국을 해 달라'는 부름에 망설임 없이 지원했습니다. 밀항선을 타고 일본으로 침투해 북송 저지운동을 벌였죠. 비밀 임무였기에 일본에 살고 있던 가족과도 만날 수 없었어요. 공작금도 부족하고 일본 경찰의 감시도 엄했지만 한 사람이라도 거짓에 속아 북송 배에 타는 일을 막으려고 필사적으로 뛰어다녔습니다."
4·19 혁명이 일어나면서 철수 지시가 내려졌다. 조 옹을 비롯한 공작대원들은 귀국을 위해 시모네세키항에 집결했으나 사전 첩보를 입수한 일본 경찰에 체포돼 출입국관리법 위반으로 15개월간 억울한 옥살이도 해야 했다.
"보통 1~2개월 구치소에 있다가 추방되기 마련인데 일본은 고의로 중범죄자들을 가두는 형무소에 우리를 수감했어요. 우리를 보낸 한국 정부는 석방을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고요. 우리는 참전 후 일본에 있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했을 때보다 더 큰 절망에 빠졌지요."
다시 5·16이 일어났고, 새 정부의 교섭으로 그들 일행은 일본에서 추방돼 한국에 돌아왔다. 이후 조 옹은 공보부 소속 해외방송국에서 일본 뉴스를 번역하는 일 등을 하며 살았다.
"재일 학도의용군의 6·25 참전은 애국·애족 정신을 몸소 실천한 일입니다. 올해부터 북송저지 공작대원에 대한 보상이 이뤄져 다행이지만 국가를 위해 목숨 바친 용사들에 대한 사회적 배려가 부족해 아쉽습니다. 제발 우리에게 관심을 보여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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