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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6·25 전시납북자③] 기획납북, 표적이 된 사람들북한 체제 건설 및 한반도 공산화 위해 ‘저명인사’, ‘우익인사’, ‘지식인 계층’ 납북
  • 김성훈
  • 승인 2018.09.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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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6·25전시납북자 - 표적이 된 사람들

북한 정권은 계속 부인하지만 6·25전쟁 당시 자행된 납북 범죄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북한 정권은 어떤 인물들을 표적으로 삼아 납북해갔을까? 북한 정권은 ‘저명인사’, ‘우익인사’, ‘지식인 계층’ 등 사회주의체제 건설에 필요하거나 한반도 공산화에 방해가 될 것으로 판단되는 인물들을 기획납북한 것으로 확인됐다.

■ 기획납북의 전개

기획납북은 북한이 사회주의체제 건설에 필요한 인재 확보 및 정권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 남한의 인사들을 계획적으로 북한 지역으로 납치해 간 것을 말한다. 이렇게 납북된 인사들을 크게 남한 사회의 ‘저명인사’, 북한으로서는 적대세력에 속하는 ‘우익인사’, 당시 남한 사회 요직에서 활동하던 ‘지식인 계층’의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저명인사’들은 북한체제의 정당성을 선전하기 위한 포섭·활용의 대상으로 최우선 납치대상에 속했다. 이들은 강요된 자수를 통해, 임의동행을 통해, 또는 친북성향 인사들의 회유를 통해 가택이나 북한 정치보위부 건물(현재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자리, 당시 국립중앙도서관), 현재 서울 광교 근방의 ‘성남호텔’ 등지에 연금됐다. 저명인사들은 조사와 감시를 받으며 라디오 방송 등에 출연해 북한의 남침을 정당화하고 북한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는 데 이용됐다.

‘우익인사’는 북한 당국이 점령지 지배에 위해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경찰, 공무원, 판·검사, 우익정당의 간부, 반공인사, 종교인 등을 말한다. 북한은 서울 점령 직후부터 이들을 철저히 조사·색출·검거해 정치보위부, 서대문형무소, 각 경찰서 유치장에 감금했다. 이들에 대한 처우는 다른 부류에 속하는 인사들보다 가혹해 즉결처분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식인 계층’에는 북한 체제 정비와 사회 발전에 필요했던 각 분야 전문가와 의료인, 기술자, 예술가들이 속했다 해방 직후부터 북한은 남한 내 지식인 계층의 월북을 조직적으로 유도했는데, 전쟁 발발 후에는 분야별 전문 인력을 체계적으로 조사해 조직화하고, 점령지 지배의 협조자로 이용했다. 그리고 이에 불응하면 체포해 일찍부터 북으로 강제로 끌고 갔다.

■ 표적이 된 사람들

▲ 김규식(金奎植, 1881 ~ 1950)

잊혀진 6·25전시납북자 김 규식

본관은 청풍(淸風), 호는 우사(尤史)로 경상남도 동래에서 태어났다. 미국인 선교사 언더우드와의 인연으로 미국 프린스턴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귀국 후 조국의 국권이 피탈되자 상해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몸담았다.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민족대표로 파견되어 열강들에게 조국의 독립을 호소했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국무위원과 부주석을 지냈다.

해방 후에는 남북이 각각 단독정부를 수립하려 하자, 김구와 함께 이를 막기 위해 노력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즉각 북한 당국에 연행돼 성북동 성남호텔에 연금된 채 북한의 선전선동사업에 동원됐고, 납북 직후 건강 악화로 1950년 12월 만포 부근에서 서거했다. 한국 정부에서는 선생에게 1989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 손진태(孫晋泰, 1900 ~ 납북 후 미상)

잊혀진 6·25전시납북자 손 진태

호는 남창(南倉)이묘 부산 동래에서 태어났다. 일본 와세다대학 문학부 사학과를 졸업했다. 1932년 송석하, 정민섭 등과 함께 조선민속학회를 창설하고, 1933년 한국 최초의 민속학회지인 ‘조선민속’을 창간했다. 1933년 연희전문 강사, 1934년 보성전문 강사를 거쳐 1945년부터 서울대학교 교수로 임용돼 사범대학장과 문리대학장을 지냈다.

6·25전쟁 발발 후 삼각산으로 피신해 은둔생활을 하던 중 가족에게 소식을 전하려다 북한군에 발각돼 서대문 형무소에 구금됐다. 반동분자로 분류돼 혹독한 처우를 받던 중 같은 처우를 받던 최린, 정인보, 현상윤 등과 함께 도보로 북송됐다. 납북 이후 역사학 분야에서 활동했으며, 1956년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1960년대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 안재홍(安在鴻, 1891 ~ 1965)

잊혀진 6·25전시납북자 안재흥

본관은 순흥(順興), 호는 민세(民世)로 경기도 평택에서 태어났다. 와세다 정경학부를 졸업했다. 일정강점기 때 당대를 대표하는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일찍부터 민족운동에 발을 들였다. 1920년대 후반 신간회 활동으로 옥고를 치르고 《조선일보》 사장직에서 물러난 후 민족해방을 위한 ‘차선’의 활동으로 ‘조선학’ 연구에 몰두했다.

해방과 함께 ‘조선건국준비위원회’의 부위원장을 지냈으나 건국준비위원회가 좌경화함에 따라 이를 탈퇴하고, 독자적으로 중도노선을 걸었다. 좌우합작위원회 위원, 미 군정청 민정장관 등을 거쳐 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북한 보위부에 의해 연금돼 북한의 선전선동사업에 동원되다가 강제 북송됐고, 전쟁이 끝난 후 1956년 북한이 납북인사들을 중심으로 결성한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에서 최고위원으로 활동했다. 1965년 3월 1일 75세를 일기로 평양에서 별세했다. 한국 정부에서는 1989년 선생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 유동열(柳東說, 1879 ~ 납북 후 미상)

잊혀진 6·25전시납북자 유 동열

본관은 문화(文化), 호는 춘교(春郊)이며, 평안북도 박천 출신이다. 일찍이 일본에서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대한제국군 참령 등을 지냈다. 1970년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안창호(安昌浩, 1878 ~ 1937) 등이 주도한 신민회와 서북학회 등에 참여하면서 반일·계몽운동에 발을 들였다. 이후 만주로 망명해 1919년 2월 김동삼(金東三, 1878 ~ 1937), 김좌진(金佐鎭, 1889 ~ 1930) 등과 ‘대한독립선언서’의 39인 중 한 명으로 참여했고, 한성임시정부 및 러시아령 대한국민회의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군사와 관련된 일을 맡아봤다.

1945년 광복 후 미 군정청 초대 통위부장(현 국방부장관)을 지내며 국군 창설에 이바지했다. 6·25전쟁 때 74세로 납북됐다. 한국 정부에서는 1989년 선생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 이길용(李吉用, 1899 ~ 납북 후 미상)

잊혀진 6·25전시납북자 이 길용

인천에서 태어난 배재학당을 나와 일본 도시샤(同志社) 대학에서 유학했다. 집안 사정으로 졸업하지 못하고 귀국한 후 철도국에서 근무하다가 《동아일보》 사장이던 송진우의 권고로 《동아일보》에 입사해 체육기자로 일하며 각종 운동경기 전문화에 이바지했다. 《동아일보》 재직 중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 선수의 가슴에서 일장기를 지우고 신문과 《신동아》에 게재한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고, 《동아일보》는 정간됐다.

해방 후 조선체육회(현 대한체육회) 부활에 크게 공헌했으며, 1946년 《동아일보》에 복귀했다. 전쟁이 발발하자 피신하지 않고 있다가 7월 중순쯤 서울 성북동 노상에서 정치보위부원으로 추정되는 이들에게 반공 정당인 한국민주당원이라는 이유로 강제 연행됐다.

한국정부는 1991년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고, 1989년 한국체육기자연맹은 이길용체육기자상을 제정해 매년 수여하고 있다.

▲ 정인보(鄭寅普, 1893 ~ 1950)

잊혀진 6·25전시납북자 정인보

본관은 동래(東萊), 호는 담원(薝園), 위당(爲堂)으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1910년대 만주로 건너가 일찍이 항일운동에 몸담았으나 1913년 부인의 죽음을 듣고 귀국해 해방될 때까지 국내에서 활동했다. 교육에 몸담으며 민족사관 정립과 국학 보급, 국어 보존에 힘써 1935년 조선 후기 실학의 집대성자인 정약용(丁若鏞, 1762 ~ 1836)의 문집인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를 펴내며 실학연구를 주도하기도 했다.

해방 후에는 일제의 식민지 정책에서 벗어나 우리의 국학을 새롭게 부흥·발전시키고자 국학대학을 설립했고, 대한민국 건국 준비사업에 참여해 초대 감찰위원장을 지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북한 당국의 감시를 받다 정치보위부로 연행된 후 소식을 알 수 없다가 한 지인이 그의 묘가 평양에 있음을 확인함으로써 그가 1950년 11월 사망하였음이 알려졌다. 학자로서의 업적을 인정받아 199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이 추서됐다.

다음 기사에서 계속... 

[잊혀진 6·25전시납북자④] 전시동원 납북, 대대적인 납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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