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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국적 ‘조총련’에 門 여는 한국, 조총련의 본질은 조선노동당 전위대
  • 홍형 전 주일(駐日)공사
  • 승인 2017.08.19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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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 5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조총련 창단 60주년 행사  ⓒ 인터넷 캡쳐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재일동포의 국적에 상관없이 고향 방문을 정상화하겠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 북한 국적자인 조총련 인사들의 마음대로 입국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조총련(재일조선인총연합회)은 ‘종북의 원조’로 꼽힌다. 홍형 전 주일공사는 “조총련은 교포 단체로 위장한 조선노동당 재일(在日)지부이며, 적지(敵地) 일본에서 대한민국을 공격해온 기지”라며 “지난 70년간 평양의 전략과 지시에 따라 정치 모략 전쟁부터 잔혹한 비밀공작까지 수행한 한반도 냉전의 주역”이라고 지적했다.

조총련의 본질은 조선노동당 전위대  (홍현 전 주일공사)

조총련은 단순히 북한을 지지하는 교포 단체가 아니다. 교포 단체로 위장한 조선노동당의 재일(在日)지부이며, 적지(敵地) 일본에서 대한민국을 공격해온 기지다. 조총련은 지난 70년 간 평양의 전략과 지시에 따라 정치 모략 전쟁부터 잔혹한 비밀공작까지 수행했다. 즉 한반도 냉전의 주역이었던 것이다. 조총련의 존재가 어째서 한일 관계, 특히 안보 협력의 한계를 설명하는 자료가 되는가?  

홍현 전 주일공사

흔히 민단(民團)을 조총련에 대비시키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조총련의 본질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민단은 조총련이 아닌 재일동포들을 칭하는 표현일 뿐 민단과 조총련은 전혀 차원이 다른 존재다. 조총련의 본질에 대한 인식과 진단이 정확하지 못했기 때문에 한일 양국이 모두 조총련의 공작에 당해왔다. 즉 한일관계가 좀 더 발전되지 못한 배후에는 조선노동당의 전위대, 즉 ‘종북(從北)의 원조’인 조총련 조직이 있었던 것이다. 

대한민국은 미국에 종속된 가난하고 음험한 독재국가이고, 북한은 주체적인 사회주의 국가라는 이미지를 1980년대 중반까지 일본은 물론 국제사회에 확산시켜 온 것도, 그래서 한국 사회에 종북세력을 결정적으로 키워온 것도 바로 조총련의 임무였다. 

조총련이 남북한 대결에서 대한민국의 옆구리를 찌르는 존재가 될 수 있었던 이유와 배경은 현대사 차원에서 아직도 제대로 규명되고 있지 않다. 많은 재일(在日) 한국인들, 특히 조총련계 교포들은 특이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북한이 분단 이후 김 씨 왕조라는 봉건시대로 회귀한 것처럼, 조총련 사회도 봉건시대에서 거의 한 발자국도 진화하지 못했다. 

일제 식민지하에서 좌경화된 지식인들과 공산당이 해방되자마자 재빨리 손을 써 정상적 교육을 받지 못한 재일 한국인 사회를 순식간에 장악했다. 이것이 재일동포들의 정체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북송사업은 조총련계 재일 한국인 추방작전 

물론 조총련 조직 내에서도 평양에 대한 맹종에 저항하는 동포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저항자들은 평양의 무자비한 숙청과 똑같이 일본에서도 철저히 제압, 제거되었다. 그리고 이들 조총련 이탈 세력을 포용, 지원해야 할 재일 민단의 타락 때문에 조총련은 외부로부터의 공격을 받지 않는 상황에 놓였다. 

재일 민단은 지금 스스로를 ‘생활자 단체’라고 칭하며 조총련 동포를 ‘게토’로부터 해방시키는 일에는 무관심하다. 재일 한국인들은 자유민주주의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지 못했고, 당연히 조총련을 극복할 수 있는 정치적 훈련을 받지 못했다. 지금 민단 사회에는 그런 제도적 장치와 과정조차 없다. 

일본 당국이 조총련을 방치해둬도 괜찮은 존재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조총련을 감시 대상으로 삼는 ‘파괴활동 방지법’이 있고, 이를 위한 조직이 있다. 조총련계 재일 한국인들을 일본에서 추방하려고도 했다. 9만3000여명을 자유세계로부터 스탈린주의 생지옥으로 보낸 북송사업(1959~1984)이다.

이 사업을 주도한 것은 조총련과 일본 사회의 범좌파지만 대한민국이 거국적으로 반대했던 이 반(反)문명적 계획을 적극 이용, 지원한 것은 일본의 민족주의 세력인 우익과 언론 및 일본 정부였다. 

이들의 방조 없이 북송사업이 장기간 지속될 수는 없었다. 북송사업은 한일 국교정상화 6년 전에 시작되어 더 이상 북송 희망자가 없어 사업이 종료되는 1984년까지, 즉 국교정상화 후에도 19년이나 더 지속되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있을 수 없는 이 부끄러운 일에 대해 많은 일본인들이 “당시에는 북한이 스탈린주의 생지옥인지 몰랐다”고 변명한다. 

일본이 2차 세계대전의 패전으로 일본인 60만 명 이상이 만주에서 시베리아로 연행되어 6만 명 이상이 그곳에서 죽었는데, 일본 사회가 스탈린주의 체제가 어떤 것인지 몰랐다는 게 말이 되는가?

북송사업은 일본 정부가 소련으로 끌려간 일본인들을 모두 귀환시킨 뒤에 시작되었다. 당시 총리였던 기시 노부스케(佐藤信介·아베 총리의 외조부)와 그 세대들은 시베리아로 연행되었던 일본인들이 어떤 경험을 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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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형 전 주일(駐日)공사  honghyung48@yahoo.co.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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